방패 잃은 김건희, 포토라인 설까
김건희씨 관련 의혹들은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자, 정권 몰락의 시작과 끝이었다. 임기 내내 윤석열 부부는 이를 외면하거나 권력의 힘으로 방어해왔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권력이라는 견고한 방패는 사라졌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작동한 대통령 관저에서도 물러났다. 회피와 방어, 진전 없는 수사로 가려졌던 의혹들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다.
■ 공천 개입 의혹
김건희씨가 연루된 사건 가운데 수사 속도가 가장 빠른 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인 공천 개입 의혹이다. 검찰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2022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과 김건희씨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윤석열 부부가 같은 해 6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김건희씨는 이 의혹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된 피의자다.
검찰은 김건희씨에 대한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김씨가 2021년 6월부터 명태균씨와 대화하며 대선 지지율 등 여론조사 결과를 미리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2022년 5월9일 “당선인(윤석열)이 전화했는데 ‘(김영선 전 의원을) 그냥 밀으라’고 했다”라고 말한 전화 녹음파일 등 구체적 물증과 관련 진술들을 확보하면서다. 지난 2월부터 김건희씨 측과 소환조사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공천개입 의혹을 수사해오던 창원지방검찰청 전담 수사팀이 2월1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명태균 사건 전담 수사팀으로 사건을 옮긴 직후다. 다만 김건희씨 측은 건강상 문제와 윤석열 탄핵심판 등을 이유로 일정 조율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김건희씨 조사 일정 조율이 늦어지면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명태균씨 사이 부당거래 의혹(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 등)에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천하람 개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3월29일)하는 등 칠불사 회동으로도 수사를 확대했다. 검찰이 개혁신당 의원을 조사한 것은 명태균씨 사건이 중앙지검으로 넘어온 이후 처음이다. 물증 확인과 주변인 조사가 마무리되면 이 의혹의 꼭짓점에 있는 김건희씨 소환조사만 남는다.
칠불사 회동은 제22대 총선(2024년 4월10일)을 앞둔 지난해 2월29일 경남 하동군 칠불사에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과 명씨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만난 일을 말한다. 김영선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김건희 여사가 ‘창원 의창구(김 전 의원 지역구)에서 김상민 검사가 당선될 수 있도록 지원하라. 대신 선거 이후 (나에게)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회유했다”라고 폭로하며, 그 대가로 개혁신당 비례대표 1번 자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씨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공소시효가 임박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이후 6개월인데, 대선(2022년 3월9일) 2개월 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됐다. 공소시효는 앞으로 4개월 남았지만, 윤석열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되면서 이보다 빨리 결론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도이치모터스·명품백 수수 의혹
윤석열 정부 검찰의 대표적 ‘김건희 봐주기 수사’로 꼽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아직 검찰 손에 남아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지난해 10월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연루 혐의를 무혐의로 판단했다. 이후 고발인인 최강욱 전 의원이 김씨를 다시 수사해달라며 항고했다. 서울고등검찰청은 직접 재수사에 착수하거나 서울중앙지검에 재수사를 명령할 수 있다. 고검은 아직까지 재수사 착수 또는 명령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김건희씨는 이 사건에서 ‘전주’ 역할을 넘어 주가조작에 적극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검찰 수사 결과 2009년부터 3년여 동안 이어진 주가조작에 김건희씨 명의 계좌 6개가 이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가조작 ‘주포(주모자)’ 김 아무개씨가 공범 민 아무개씨에게 주식 매도를 지시한 지 7초 만에, 김씨가 직접 운용한 대신증권 계좌에서 똑같은 가격·물량의 주식 매도 주문이 나온 사실 등이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은 2020년 4월 김건희씨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되고 4년6개월 동안 단 한 차례만 조사했다. 이마저도 대통령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이뤄진 ‘출장 조사’였다. 이후 검찰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라며 김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 사건으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수사 라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헌법재판소는 3월13일 이창수 지검장 탄핵 사건을 기각했지만, 결정문에 “김건희 문자나 메신저 내용, PC 기록 등을 확보할 필요가 있을 수 있음에도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적절히 수사했거나 수사를 지휘·감독했는지 다소 의문이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김건희씨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헌재가 밝힌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4월3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온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5억원, ‘전주’ 손 아무개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손씨는 주가조작에 연루된 정황, 고발된 혐의가 김건희씨와 비슷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손씨 유죄 확정이 김건희씨 연루 의혹과 연결돼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김건희씨의 명품백(디올백) 수수 사건도 서울고검이 검토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는 지난해 10월2일 김건희씨의 청탁금지법 위반, 뇌물수수, 변호사법 위반 및 알선수재, 증거인멸 혐의를 모두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이 사건을 고발한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가 항고했다. 고검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 공수처에 산재한 김건희씨 사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김건희씨 사건을 맡고 있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부 출범 전부터 제기된 고발사주 사건이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수처는 지난 3월6일 고발사주 사건 공익신고자 조성은씨로부터 윤석열, 김건희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3부에 배당했다. 조성은씨는 사건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 재판 과정에서 ‘윗선’ 지시로 고발장 작성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언급되자 다시 직권남용·위증·증거인멸 등 혐의로 고발했다.
공수처는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지만 2022년 5월 대통령 취임 직전 손준성 검사장만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손 검사장에 대해 1심에서 유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손 검사장에게 고발장 작성을 지시한 검찰총장(당시 윤석열) 등 상급자가 고발을 기획하고 고발장을 전달할 자로 김웅을 선택한 다음, 긴밀하게 연락을 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공수처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도 수사 중이다. 2023년 채 상병 사고 수사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건희씨의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를 통해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있다. 윤석열이 채 상병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배경에 김건희씨가 있다는 취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에 수사 인력 전원을 투입했던 공수처는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다시 채 상병 사건 수사에 착수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밖에 이종호 전 대표가 연루됐다는 의심을 사는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2015~2019년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서 여러 기업으로부터 뇌물성 협찬을 받았다는 의혹 등도 공수처가 수사 중이다.
■ 상설특검 출범할까
경찰이 담당하는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도 본격적으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2023년 5월 국토교통부는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확정된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을 경기 양평군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했는데, 강상면 일대에는 김건희씨 일가가 소유한 땅이 있어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이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민주당 경기도당과 시민단체 등이 2023년 7월 이들을 고발했으나, 공수처와 검찰을 거쳐 경찰로 사건이 이첩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전 양평군수) 등 핵심 피고발인 조사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관저 이전 공사 특혜 의혹은 감사원이 재감사에 착수했다. 앞서 감사원은 김오진 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 대통령경호처 간부 수사를 요청하며 마무리했는데, 의혹의 핵심인 관저 공사를 따낸 업체(21그램)를 누가 추천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업체는 김건희씨가 코바나컨텐츠 대표로 활동하던 당시 전시에 후원한 업체였다.
감사원은 국회의 지적과 요구에 따라 2월14일 재감사에 착수했지만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가 기각된 최재해 감사원장이 복귀 후 첫 인사(4월7일)에서 재감사 담당 국장을 지방으로 발령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감사원은 “종합적인 인사 수요를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김건희씨 관련 의혹 전반을 수사할 상설특검을 추진 중이다. 국회는 3월20일 본회의에서 상설특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반특검법 형태로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이 계속해서 폐기되자 방향을 틀었다. 상설특검법은 일반특검법과 달리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그동안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외면해왔다. 상설특검 법안에는 김건희씨 디올백 수수 의혹,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등 주가조작 의혹,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등 11가지 의혹이 수사 대상으로 담겼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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