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만 사면 AI 경쟁력 커지나…인재 레벨 달라져야"
"정부가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장 사오겠다고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공장에다가 사람 없이 장비만 사다 놓고 끝나는 게 됩니다. 제일 시급한 정책은 인공지능(AI) 인재 확보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14일 이해민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GPU 1만장' 확보 계획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현재 책정된 AI 분야 예산 총액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GPU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재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구글 본사에서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PM)까지 역임한 IT 전문가 출신이다.
이 의원은 "AI 유니콘 기업이라고 불리는 중국 딥시크, 프랑스의 미스트랄AI, 일본 사카나AI를 보며 우리도 그냥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너무 쉽게들 말씀하신다"며 "저는 한 칸만 더 들어가 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미스트랄AI는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 출신 연구자들이, 일본 사카나AI도 구글 출신 연구원과 생성형AI의 근간이 되는 트랜스포머 연구논문의 공동 집필자가 창립했다. 주목받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AI 분야에서 소위 '만렙'을 찍은 인재들이 이끌어 만든 성과라는 것이다. 중국은 딥시크 이후 AI를 포함한 첨단산업에 약 800조원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추가경정예산(추경) 정부안의 AI 분야 예산은 1.8조원이다.
이 의원은 "한국도 이런 점을 인지해야 한다"며 "AI 분야에서 약 5조원의 예산 추가 편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AI 학습을 위한 공공데이터 제공과 사용자 관점에 입각한 AI 규제 마련도 강조했다. 그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현 정부가 이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진단하며 "새로운 정부가 이미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을 만드는 것도 제품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실제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말이 되는 법'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AI기본법에서 마련될 세부 규정들이 법의 영향을 받는 국내 AI 기업 등 사용자에게 실제로 이득을 줄 수 있도록 고민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9일 출범한 조국혁신당 AI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AI 정책 아이디어 도출을 이끌고 있다. 특위에서 논의된 안건은 이 의원이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초당적 협력 기구인 'AI전환연대회의'와 연계해 정책 오픈소스화하고 어느 당이든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한다는 방침이다.
이 의원은 "제가 정치는 초보지만 AI 분야에서는 시조새"라며 "AI 관련 사안은 너무 급하고 여든 야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모든 아젠다의 중심에 있는 상황에서는 (국회의원) 300명 중 AI, 혹은 IT 과학기술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전문가로서 목소리를 내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Q. 현재 국내에 있는 GPU도 다 제대로 못 쓰고 있다고.
"광주에 있는 국가AI데이터센터가 그나마 한국에서 GPU를 어느 정도 많이 가지고 있다. GPU 없다고들 하는데 여기 가동률이 50%다. 반이 놀고 있다. 이를 모두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통과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만 갖다 놓은 것이다. 지금 4월인데 내년이 되면 GPU 사둔 것은 옛날 장비가 된다. 이런 비효율을 발생시키는 게 현재 과학기술계의 현실이다."
Q. 한국에 AI 학습에 사용할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했는데.
"한국은 AI 학습에 사용할 데이터가 없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다. 데이터를 크게 공공데이터와 그 외 데이터로 나눴을 때 한국 공공데이터는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안 좋은 상황일 것이다. 데이터의 형태가 기계에 전혀 친절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꽁꽁 숨겨진 게 사법부 쪽이다. 제가 낸 1호 법안이 판결문 공개 확대다. 기계가 읽을 수 있게끔 해야 '리걸(legal) 테크'가 발전할 수 있다. 공공데이터 영역은 나라에서 준비를 해줘야 한다. 우리가 공공 사이트에서 글씨로 보는 모든 것은 기계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Q. 앞으로 AI 규제는 어떤 방향으로 마련돼야 하나.
"자동차 산업이 교통 법규 덕분에 발달한 것처럼 진흥을 위한 규제는 '규제를 위한 규제'와 완전히 다르다. 기술 자체에 규제를 걸면 안 된다. 셰프가 쓰는 칼과 범죄에 쓰는 칼이 같으니 칼을 없애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의도를 파악하고 사람의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급자 입장에서 국정원 등 각 기관에서 AI와 관련된 인증을 여기저기서 내놓으면 수요자 입장에서 여러 개의 인증을 따야 한다. 그러면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버리거나 수많은 인증 절차를 도와주는 중간 브로커가 생기는 식이다. 항상 문제 정의에 집중해야 답이 나온다. 정부도 이제 생각을 바꿔서 수요자 중심으로 정책을 내놨으면 좋겠다.
또 국내 AI서비스가 해외로 나가고 해외 서비스가 국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글로벌 표준까진 아니더라도 AI 안전과 관련된 실질적인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AI안전연구소에서 고민해야 한다."
Q. AI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AI의 위험성은 AI 스피커가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벌어진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AI 리터러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지금 전화기 너머로 상대하고 있는 것이 AI 또는 기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awareness)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시급하게 확산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AI 시대가 오면서 한국 교육을 개혁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도 본다. 한국의 12년간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AI에 대체되기 딱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앞으로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의 가치가 점점 커진다. 예를 들면 지금보다 내가 말하고 표정을 보여주는 등 AI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체육 과목이 훨씬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이런 영역을 교육계에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 AI 발전으로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 생긴다. 변화를 버틸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면 취약계층들이 먼저 영향을 받는다. 생산 결과물 분배가 한쪽으로 쏠려 불균형이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다.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AI로 어떤 기업의 생산성이 늘어날 때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도 있다."
Q. 지난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영향에 대해 진단한다면.
"초토화됐다. 생태계 얘기를 하는데 과학기술은 풀뿌리 연구가 있고 그중 일부가 진행되는 식이다. 풀뿌리부터 불태워버린 상황이 됐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도 초유의 사태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처음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제가 아니라 KAIST 학생이 표현한 것인데 꽃나무에다 '물을 내년에 줄 테니까 올해 버텨'라고 하는 것이다. 작년에 다 고사했다. 10년 동안 해온 기초과학 연구였다면 10년을 날린 거고 과제만 날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해외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과학기술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쥐락펴락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은데 기재부 논리에 따르면 돈을 넣었으면 뭐가 나와야 한다. 연구 성공률이라는 게 원래 아주 낮아야 하는데 한국은 연구 성공률이 90%가 넘는다. 3년짜리 과제라고 한다면 3년 전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체크만 끝났다는 뜻이다.
과학기술 분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관련해서는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이 직접 심사에 참여하고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R&D 관련해서는 시급하게 다뤄야 한다. 과학기술에 무지한 정권은 나라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22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가장 잘한 것은 계엄을 해제한 것이고 두 번째로 잘한 것은 AI 기본법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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