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길이 11년의 버팀목"... 세월호·위안부·쌍용차·장애인 그리고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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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58)씨는 2014년 8월 16일을 또렷히 기억한다.
교황이 손을 잡고 위로하자 김씨는 손등에 입을 맞춘 뒤 편지를 전달하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 제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교황이 카퍼레이드 중 통역과 귓속말을 하더니 차에서 내려 유족이 모여 있던 곳으로 직접 걸어오셨다"면서 "이후 외신들이 세월호 참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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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정부 해결 못한 현안 경청"
고령에도 장애인들과 50분 서 있어
한반도 평화 기원 "사제 없기에 방북해야"
세월호 참사 유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58)씨는 2014년 8월 16일을 또렷히 기억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4일째 단식 중이던 김씨 앞으로 카퍼레이드 행렬이 다가오다 멈춰 섰다. 차 안에서 흰색 수단(성직자 복)을 입은 노년 남성이 내렸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미리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다. 우리 경찰 경호원들은 당황하며 김씨 등 유족과 교황 사이를 막아섰지만 교황청 소속 경호원들이 한국 경호 인력을 물러서도록 했다. 김씨 앞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왼쪽 가슴엔 노란색 리본 배지가 반짝거렸다. 교황이 손을 잡고 위로하자 김씨는 손등에 입을 맞춘 뒤 편지를 전달하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 제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알려진 21일 본보 통화에서 "그 만남은 이후 11년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힘이 됐다"며 "선종하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고급 방탄차 대신 '쏘울', 낡은 구두… 소탈한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한국의 사회 약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히 2014년 8월 방한 때는 세월호 유족뿐 아니라 고통 받아 온 소외 계층을 직접 만나 위로했다.
8월 18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북한이탈주민과 납북자 가족 등을 초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에 초청된 이들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제단에 올랐으며, 퇴장하면서도 위안부 할머니와 장애인 등의 손을 잡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빌었다.
당시 미사에 초청받았던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본보 통화에서 "교황이 제단을 향해 걸어가는 통로 옆에 앉았는데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라 동료들과 감동 받았다"며 "우리 정치권이나 정부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현안을 미리 듣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 김씨도 만남 때의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그를 비롯한 유족들은 당시 이 문제에 뜨뜻미지근한 우리 종교계의 태도에 실망했다. 김씨는 "교황이 카퍼레이드 중 통역과 귓속말을 하더니 차에서 내려 유족이 모여 있던 곳으로 직접 걸어오셨다"면서 "이후 외신들이 세월호 참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방한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도 세월호 리본을 그대로 달았다. 그는 '정치적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말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교황은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찾았을 때 의자에 앉으라는 꽃동네 측의 권유에도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50여 분 내내 서 있었다. 당시 78세였던 교황은 체력적인 부담을 느낄 만했지만 장애인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방한 당시 권위를 벗어던지고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인 점도 우리 국민의 마음에 각인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전 차량으로 고급 방탄차 대신 기아자동차의 1,600㏄급 준중형 차인 '쏘울'을 골랐다. 그는 방한 내내 교황의 상징인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20년간 착용한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낡은 검은색 구두를 신었고 이동 중에는 오래된 가죽 가방을 직접 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2018~2019년 무렵 방북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북한 땅을 밟지는 못했다. 당시 교황청 내부에선 방북 반대론이 상당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황이기 이전에 선교사다.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다가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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