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15) “기도 많이 하고 믿을 만한 사람” 대통령 자녀 보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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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2월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형부조차 만나지 않았기에 나를 추천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사 검증을 통해 내 배경이 안전하고 그럴 듯하다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초라한 사람이었다.
그들과 한 차례 더 만남을 가진 뒤, 청와대로 들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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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보살피고 도울 사람 찾아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지만
인사 검증 과정서 가족 배경 한몫
1975년 2월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공무원 같은 단정한 정장 차림의 두 사람은 처음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기도를 많이 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일해 보고 싶다”며 자신들이 청와대에서 왔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추천했다고 하면서도 그 추천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삼각산에서 내려온 뒤로 친척은 물론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형부조차 만나지 않았기에 나를 추천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에게 늘 맞고 살아 눈두덩이가 멍든 채 지내던 나는 가족 친척 친구를 피해 다녔다. 어머니에게조차 “요년아”라는 말과 함께 외면당했다. 이혼은 곧 수치였고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삼각산에 있을 때도 그 이후에도 누구에게도 손 내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돈 1원도 꿔본 적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삼각산에서든 교회에서든 그저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이었는데, 청와대 관계자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된 걸까.
추측하건대 내가 발탁된 데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 확인했을 내 가족 배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사촌 형부는 차관보 출신 변호사였고 이종사촌 형부는 시중은행의 은행장이었다. 막내 숙부는 서울의 한 대학교 교수였다. 이혼이라는 개인사는 오히려 가족 연결 고리가 없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평가됐을지 모른다.
인사 검증을 통해 내 배경이 안전하고 그럴 듯하다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초라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일 시켜 먹기엔 괜찮은 종’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청와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기도하신 분의 추천이었다”고 들은 것이 전부였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된 이후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려는 정국은 사실상 계엄 상태와 다름없었다. 1974년 광복절에는 영부인의 서거라는 비극이 더해졌다. 국민의 동정 여론이 형성됐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은 여전히 계속됐다.
영부인 서거 후 영애 근혜(박근혜 전 대통령)와 두 동생을 보살피고, 근혜의 대외 활동을 도울 사람이 필요했다. 청와대는 그들의 보모로 들어올 ‘어디에 내세워도 문제없고 믿을 만한 인물’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때 내 나이 마흔 살이었다.
그들과 한 차례 더 만남을 가진 뒤, 청와대로 들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유신 물러가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는 혼란의 시기,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때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처음 마주한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은 짙은 검은빛으로 굳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고민과 고뇌가 서려 있었다. 대통령이라면 모든 것이 풍요롭고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눈앞에 선 그의 표정은 고통과 근심으로 가득했다. 피부빛마저 어둡고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모습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연민이 밀려왔다.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박 전 대통령의 인상이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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