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도중 “AI교과서 도입해달라” 독촉해놓고 “예산 없어 태블릿 못 사”

김원진·김송이 기자 2025. 4. 20. 17: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초등학교에서 열린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공개수업에서 초등생들이 AI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률이 저조하자 일부 시도교육청에선 일선 학교에 1학기 중 추가 도입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입을 결정한 학교에서도 예산이 없어 태블릿PC를 구입하지 못해 AI 교과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속도전’으로 추진한 AI 교과서 도입이 예산 낭비를 부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시도교육청이 AI 교과서를 추가 도입해달라고 요청했다. 경기도 A교육지원청은 이달 초 AI 교과서를 도입하지 않은 학교의 교감 선생님에게 ‘AI 교과서를 신청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A교육지원청 관할 학교들은 AI 교과서 도입률이 경기도 내 다른 지역 학교에 비해 2배가량 낮은 편이었다.

한 10년차 초등교사는 “보통 학기 전에 교과서가 선정되고 도입됐다. 학기 중에 AI 교과서를 도입하라고 요청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AI 교과서 채택률을 끌어올리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올해 1학기 개학 날까지 AI 교과서를 도입한 학교는 전국 3개교 중 1개교(32.4%)에 그쳤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AI 교과서 도입률(98%)을 기록한 대구에선 교사들이 AI 교과서 공익감사 청구에 나섰다. 지난 13일까지 대구 시민 1526명 동의를 받았다. 대구의 16년차 초등교사 B씨는 “우리 학교는 올해 2월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가 지난달 21일쯤 교장이 갑자기 AI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논의를 거쳐 AI 교과서 도입이 확정됐다. B씨는 “주변 학교 학운위에선 AI 교과서를 자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는 학기 전 AI 교과서를 신청했지만 아직 모두에게 태블릿PC 보급이 되지 않았다. 이 학교는 디지털 선도학교로 AI 교과서를 의무 사용해야 한다. 이 학교의 교사 C씨는 “AI 교과서를 쓰려면 1인 1기기가 보급돼야 하는데, 아직 기기 구입 예산이 내려오지 않았다”며 “다음 달쯤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일부 시도교육청의 ‘속도전’ 양상과 달리 교사들은 태블릿PC 기반의 AI 교과서를 가입하고 로그인하는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초등 3, 5학년 두 자녀를 키우는 대구 수성구의 초등교사 D씨는 “3학년 아이가 집에 와서 ‘로그인 연습을 좀 해야겠다’고 해서 이틀 동안 30~40분 연습했다”며 “터치에는 익숙하지만 키보드 사용은 능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시프트’ 키를 눌러 특수문자를 입력하는 법도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다문화 가정 부모의 접근성을 높이는 안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말 서울의 고등 교사들은 “다국어 지원이 되지 않아 가입이 더욱 더디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고등 수학교사는 “AI 교과서가 ‘유니버설 디자인’(모두를 위한 설계)을 표방했지만 안내 단계부터 문턱이 발생했다”며 “색약인 학생은 쓰기 어렵고 동영상은 번역이 안 되는 등 문제가 많다”고 했다.

정부는 AI 교과서를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 자원이 적은 읍면 단위 ‘작은 학교’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13일 기준 AI 교과서를 한 권 이상 선정한 학급 규모 ‘4명 미만’인 초등학교는 전체의 21.4%였다. 전국 초등학교 평균(32.8%)보다 낮다.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전남의 초등교사 F씨는 “작은 학교에선 교사와 1대 1에 가까운 대면 수업을 하면서 맞춤형 학습을 할 수 있다”며 “AI 교과서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31일 기준 AI 교과서 가입률은 59.9%에 불과했다. AI 교과서 가입이 늦어지며 낭비한 AI 교과서 구독료만 지난달 56억원에 달한다는 국회(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도 나왔다. “마지못해 신청만 하고 기기는 묻어둔다”는 교사들이 적지 않아 실제 사용률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