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 태국 치앙마이
시끌벅적한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 드는 치앙마이는 태국 수도 방콕에 비해 소박한 도시다. 그래서일까. 디지털 유목민이 사랑하는 도시이자 배낭여행객의 천국이다. 노천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그야말로 힐링되는 곳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태국어로 '천천히, 느릿하게, 편하게'라는 뜻의 "사바이 사바이"가 자주 귓가를 스친다. 서민들 삶의 터전마다 소박한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 절로 느껴진다.
느긋하게 천천히 영혼도 쉬어가는 곳
그래서 이곳에서만큼은 관광지를 둘러보는 목적 지향적인 여행보다 현지인 또는 장기 체류자처럼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은 물론, 호의로 가득한 사람들이 주는 위안과 다정함이 넘치는 치앙마이. 언젠가 이 도시도 변할지 모르니 이왕 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서두르라고 권하고 싶다.800년 긴 역사를 자랑하는 치앙마이는 '새로운 도시'라는 의미로, 13세기 이 지역(현 태국 북부)에 들어섰던 란나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다. '란나'는 100만 개 논(沓·답)을 상징하며, 그만큼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이후 미얀마의 침공에 시달리던 란나왕국은 1939년 태국에 완전히 편입됐다. 같은 태국임에도 방콕과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란나왕국의 흔적은 치앙마이 중심인 올드시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벽은 일부 복원된 곳을 제외하고 다 무너졌지만 해자(垓字: 성 주위에 둘러 판 못)는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다. 올드시티에는 고급 호텔부터 사원, 야시장, 카페와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여행객들이 흥미롭게 둘러볼 만한 명소가 몰려 있다. 가로세로 거리가 2㎞ 남짓이라 부담 없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불교 사원들
올드시티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태국 국민의 93% 이상이 불교도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여기저기 사원 천지다. 태국어로 사원을 '왓(Wat)'이라고 하는데, 골목마다 왓 표지판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00여 개 사원이 밀집해 있다. 그중 1345년에 지은 '왓 프라싱'을 비롯해 60m 넘는 체디(태국식 탑)가 압도적인 '왓 체디루앙',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왓 치앙만' 등 역사적·미학적으로 의미 있는 사원들은 꼭 방문해보자. 그 외에도 왕족 묘실이 안치된 '왓 록몰리'와 실버템플로 불리는 '왓 스리수판'까지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사원들이 여행자 마음을 사로잡는다.치앙마이 서북쪽 15㎞ 지점에 있는 성스러운 수텝산(1677m) 중턱에 위치한 '도이수텝'도 필수 코스다. 태국을 대표하는 사원인 도이수텝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불탑과 크고 작은 불상이 가득하다. 300개 계단을 올라 본당에 들어서면 중앙에 부처 사리를 모신 높이 22m의 황금빛 불탑이 눈에 들어온다. 사원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전망대다. 해발 1053m에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석양이 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과 치앙마이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올드시티 주변에서는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아트스튜디오 관람과 함께 치앙마이의 특징을 살린 요리, 요가·명상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쿠킹클래스는 요리사와 함께 로컬 시장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해 와 태국 현지 요리를 직접 만든 뒤 다국적 여행객들과 나누는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올드시티 성곽 안팎은 성벽과 해자로 구분되며, 문이라는 뜻의 '타패게이트'가 동서남북으로 열려 있어 이들을 연결한다. 특히 동쪽 타패게이트는 세계 배낭여행객이 모이는 곳으로 활기가 넘친다. 게스트하우스, 브런치 카페, 바와 클럽, 기념품 가게 등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과 함께 치앙마이의 가로수길로 불리는 '님만해민', 치앙마이의 대표 야시장 '나이트 바자'로 이어진다. 타패게이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데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준다.
※ 주간동아 1486호에서는 '치앙마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재이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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