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육성과 돈이 되는 축구 산업화, 정몽규 회장의 '마지막 조각'

이성필 기자 2025. 4. 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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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와 계약을 끝내고 천안에 조성하는 축구센터 건립 사업 마무리도 정몽규 회장의 비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개념이 아닌 향후 축구 산업 발전의 기반을 다진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대한축구협회
▲ 박한동 회장 정몽규 회장 ⓒ곽혜미 기자
▲ 정몽규 회장은 4선에 성공했다. 예상 밖으로 85%나 되는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귀환했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지난 9일 대한축구협회는 제55대 집행부를 발표했다. 정몽규 회장이 예상 밖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뒤 집행부 구성을 위해 축구협회 비판적인 지적을 해왔던 여러 젊은 축구인을 접촉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취임 전 분명 '마지막'이라고 외친 정 회장이다. 막상 집행부로 들어오라 제안을 하니 한결같이 거절 사인이 돌아왔다. 밖에서 손쉽게 비판하는 것이 편한 것인지, 아니면 안으로 들어와서 직언할 용기가 없는지는 알 길이 없다.

김승희 코레일 감독의 전무 '파격' 선임…다양한 목소리 기대되는 집행부 조각(組閣)

다만, 한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전무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A씨와 통화해 왜 거절했는지 묻자 그는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다른 훌륭한 선수 출신 지도자나 행정직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전형적인 언론 응대형 멘트를 던졌다. 혹시 생업이나 부업을 놓지 못해서 그런 것이냐 묻자 어색한 웃음만 돌아왔다.

일부에서는 정 회장의 55대 회장 당선을 두고 '체육관 선거'라며 민주적이지 않다 비유했지만, 총선거인단 192명 중 182명이 투표했고 156표를 받은 것은 상당히 의외인 결과로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도축구협회 회장만의 전유물이 아닌 지도자, 심판, 선수 등 다양한 직군에서 표를 던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 회장 입장에서는 더 부담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표심이다.

일선에서는 '축구의 산업화'가 아직도 더디다고 한다. 냉정하게 보면 축구로 먹고사는 이들은 최상위 수준인 국가대표, 프로 선수, 지도자 정도가 전부다. 오심 문제로 시끄러운 심판의 처우는 여전히 개선을 요구받고 있고 풀뿌리 축구의 근간은 사회 구조 개편과 맞물려 흔들리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중국, 일본은 물론 인도네시아 등 꾸준히 투자하며 선수를 발굴하는 국가들에 패하는 것은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A대표팀의 위치도 위협을 받을 수 있고 또 그 전조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정 회장이 마지막 임기 집행부 조각(組閣)에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꽤 시간이 걸렸고 축구협회는 대전 코레일에서 선수, 코치, 감독을 역임했던 김승희 감독을 전무이사로 선임했다고 알렸다.

과거 철도청과 한국철도에서 코레일까지 이어진 실업 축구, 내셔널리그로 대표되는 현장에서 뛰었던 김 감독의 전무 발탁은 '일반적인 축구팬' 시각에서는 "누구야?"라는 소리가 나오고도 남을 수 있는 인선이었다.

부회장단과 분과위원장, 이사 등은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나 이용수 전 부회장,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만 보고 '또 2002 세대가 해 먹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흙수저'로 바닥에서 치고 올라와 주목받는 이정효 광주FC 감독이나 국가대표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은퇴한 김호남 전 부천FC 1995 공격수가 이사로 들어왔고 대학 축구 등의 사정을 잘 이해하는 이장관 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기술발전위원장으로 들어온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축구인' 시각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는 선임이다. 정몽규 회장이 남자 A대표팀의 성적과 그에 파생하는 감독 선임 등으로 비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대중 여론에 영합하는 정치권에도 불려 다니니, 정작 뿌리를 튼튼하게 다지지 못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에 어려움 겪는 것을 김 전무를 통해 흔들리지 않고 시도하려는 의미가 담긴 인선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꽤 들려왔다.

▲ 백기태 감독이 이끄는 17세 이하(U-17) 축구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에 올라 3회 연속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 대한축구협회
▲ 보인고 배승균. ⓒ플랜A 글로벌

A대표팀 현상에만 비판하고 정작 집행부 외면, 풀뿌리 축구 구조가 흔들린다

일선 지도자들은 김 전무가 정 회장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1~7부 리그 사이의 승강제 완성과 더불어 학생 선수 저변 확대와 유소년의 체계적 육성, 충남 천안에 조성 중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를 한국 축구의 메카로 굳히겠다는 등 주요 정책 실행의 일선에 선다는 것을 고려하면, 낙수 효과가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눈치도 있다.

김 전무의 한국 철도 코치 시절 선수로 뛰었다는 경남 밀양의 밀성초등학교 백승인 전 감독은 현재 백수다. 밀성초 축구부가 해체된 뒤 백 감독은 축구계와는 많이 멀어졌다. 밀양 출신인 백 감독은 미남 골키퍼로 불렸던 김용대 전 국가대표 골키퍼와 함께 자란 죽마고우다. 변성환 수원 삼성 감독과는 경남상고에서 같이 뛴 인연도 있다.

백 전 감독이 키운 제자는 여럿 있다. 현재 기준으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159cm로 K리그 최단신 선수지만, 꽤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대전 하나시티즌 공격수 김현욱이나 K리그2(2부 리그) 전남 드래곤즈를 코리아컵 2라운드에서 이겨 화제를 낳았던 세종SA의 장성재가 대표적인 제자다. 그 역시 전남에서 뛰었던, 프로물을 먹었던 선수다.

수도권 밖 지역의 인구 소멸과 더불어 명문 학원 축구팀이 해체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프로 산하 유스나 학원 축구 중 명문팀이 아니면 프로에 갈 수 없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명맥을 잇는 축구부가 있다는 것은 지역의 자랑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백 감독도 이런 소용돌이에 눈물을 흘린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프로 등에 진출한 제자들이 종종 연락와서 '감독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마음이 좋아진다. 물론 그것도 한순간이다. 제 생계를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다. 지도자 수업을 열심히 받았지만, 가르칠 팀이나 선수가 없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나 싶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의 스승으로 경남축구협회 간부까지 지냈던 김종호 전 감독은 지도자를 관두고 학교 안전 지킴이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정년이 지나 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더는 일을 하기 어려운 제도로 밀려난 부분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오래 어린 선수들을 봐왔던, 60~70대 노회한 지도자의 눈으로 재능 있는 선수 발굴 능력을 썩히는 아쉬움으로 연결된다.

당장 축구협회가 오래 전부터 야심 차게 시도했던 유소년 우수 선수 발굴 체계인 '골든 에이지'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백 감독이 연결해 준 한 지역 일선 지도자 B씨는 꽤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B씨는 "축구협회에서 각 지역 축구협회에 재능 있는 선수 2~3명 정도를 골든 에이지로 보내라는 공문이 오면 실제로 가는 선수는 재능 있는 선수가 아닌 경우가 있다. 축구부 회장 또는 총무의 아이를 보낸다. 감독 월급을 누가 주나. 학부모 중에서도 리더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재능 있는 선수는 골든 에이지에 가지 못한다. 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뛰는 것도 누가 정밀하게 관찰하지 못하니 훨씬 더 가능성 있는 선수는 묻힌다"라고 주장했다.

프로 산하팀이 전국 대회에서 학원 축구부와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굳어졌다. 수준 차이가 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최근 프로 산하와 학원 축구부 사이의 클럽 축구에서 재능 있는 선수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소위 취미반으로 시작해 재능을 꽃피우는 경우다. 일찍 해외 축구 유학을 가지 않는 이상 유, 초등부 선수가 학원이나 일반 클럽팀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근간 흔들리는 축구 선수 육성 발굴 체계 재정비→'축구 산업화' 토대 이뤄야

전통 명문 보인고의 경우 배승균을 네덜란드 명문 페예노르트와 1군 계약에 성공했다. 보인고의 경우 페예노르트의 유스 아카데미처럼 활용되는 교류 협약도 맺었다. 프로 산하로 가도 우선 지명 후 대학 졸업까지 묶여 자신의 진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학원이나 클럽 축구에서도 보석이 될 원석 발견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알려주는 사례다. 꼭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관련 산업으로 빠질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선수들 잘 발굴하려면 지역의 학원, 클럽팀 선수를 면밀하게 관찰하기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해 보인다. B씨는 "골든 에이지를 시나 도 안에서도 세부 권역별로 구성하고 해당 지역에서 오래 유소년을 봐왔던 지도자에게 관찰 및 발굴을 맡긴 뒤 이를 토대로 광대역 골든 에이지를 맡은 축구협회 전임 지도자가 재확인하면 된다고 본다"라며 경험 많은 지도자들의 눈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좋게 보면 선발 체계의 정비고 삐딱하게 보면 지도자들의 일자리만 양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국 등 축구 선진국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지도자들이 여전히 연령별 대표팀을 맡거나 후학을 양성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책임감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적당한 보수는 당연한 열매다.

B씨는 "괜찮은 선수들을 권역에서 집중 관찰한다면 굳이 다른 지역으로 위장 전입해서 그 학교나 클럽 축구부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다. 정 회장이 산업을 말했다면 지역 안에서 키워 성장시켜 중앙도 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지역의 경쟁력 강화가 곧 한국 축구의 코어가 탄탄해지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이는 백 감독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는 "어디서라도 아이들을 더 가르치고 싶다. 일을 할 곳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한탄했다.

정 회장이 마지막 임기에 완성하려는 축구 산업 성장의 조각(彫刻)은 이제 끌로 조금씩 내려쳐 윤곽이 보이는 정도다. 돈을 벌어서 쓰겠다는 의지가 있고 계속해 규모의 확대를 이루려는 노력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형태로 돈을 써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단순히 축구 인프라만 다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지출해야 가시적인 성과도 날 수 있다.

일련의 흐름에서 A대표팀 성적에 일희일비, 집행부가 무지성으로 비판받는 일이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A대표팀과 상관 없이 가야 할 길은 가는 것이 필요하다. 옆나라 일본의 축구 100년 대계가 그렇다.

아마추어 현장에 잔뼈가 굵은 김 전무가 전국의 축구 환경을 살피고 들은 뒤 정 회장에게 직언하며 개선해 나가는 그림이 잘 그려질 수 있을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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