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사람에 맞춰야 할 때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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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정부 주도로 대량 공급되기 시작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도권의 비싼 집값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지만, 이미 사람이 집에 맞춰서 살아야 할 시기는 지났다.
집이 사람에 맞게 지어져야 할 수요자 우위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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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환경에 맞춰 살아온 100년
이제는 삶에 맞춘 집을 지을 때
수요자 중심 주거로 전환해야
아파트가 정부 주도로 대량 공급되기 시작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처음 접했던 입주민들은 김칫독, 간장독을 어디에 묻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안방 아랫목에서 밥상 펴놓고 식사하던 사람들에게 LDK(거실, 식당, 부엌)분리도 혼란스러웠다.
한국전 종전 이후 작년까지 400배 이상 증가한 1인당 소득만큼이나 우리 생활은 급변했다. 본격적인 도시개발 30여 년 만에 도시에 사는 인구 비율이 90%를 넘었고, 지금은 전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80% 이상이 공동주택(다세대, 다가구 등 포함)에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이 집에 맞춰서’ 변해야 했다. 도시화 과정에서 사람은 간단히 숫자로 치환됐다. 100명이 거주하는 집, 1,000명이 10분 안에 움직일 수 있는 도로 등 사람은 공급 모델 속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더 빨리, 더 높이’는 근대 올림픽경기를 부활시켰던 쿠베르탱 남작이 제안했던 모토였지만, 우리는 이를 주택공급과 도시개발의 구호로 곧잘 활용했다. 주택은 사람이 잘 살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숫자였고, 목표치였다.
4인 가구가 표준이던 시절이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기 신도시는 4인 가구를 타깃으로 조성됐다. 가족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선사하려고 가장들은 매일 2~3시간씩 걸리는 통근을 감내했다. 세월이 흘러서 작년 기준 4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에서 4분의 1 미만이 됐다. 이제 1~2인 가구는 교외 신도시보다 직장 인근을, 결혼해서 자식을 희망하는 신혼부부는 처가나 시댁 인근을 선호한다. 출퇴근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교외의 넓은 집에 살기보다는 좁더라도 직장 근처 주택을 선호한다. 1~2인 가구들은 동네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려는 '올인빌(All in Ville)' 경향도 강하게 보인다. 인구 변화는 당연히 수요자 요구의 변화를 수반하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공급 물량을 정해놓고 숫자를 채워가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 조성된 경로당, 피트니스 클럽 등 각종 공간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비아파트 주민들은 주차부터가 전쟁이고, 보육이나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은 엄두도 못 내는 곳이 태반이다. 주거 만족도를 측정해 보면, 아파트 주민과 비아파트 주민의 만족도 차이는 2배 이상이다. 만족도는 거실, 방, 화장실 등이 있는 주택 내부공간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불만족은 주로 외부공간에서 나온다. 특히 주차와 문화공간에 대한 비아파트 주민의 요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 주택과 도시가 급격한 탈바꿈을 시작한 지 반백 년을 넘겼다. 그동안 사람들은 주택에 맞춰서 자기 삶의 방식까지도 바꿔왔다. 공급자 우위의 환경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잘 참아왔다. 이제는 안방 아랫목을 찾지도 않고, 김칫독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지 못하는 세대가 다수다. 인구구조도 1~2인 가구 위주로 재편됐다. 수도권의 비싼 집값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지만, 이미 사람이 집에 맞춰서 살아야 할 시기는 지났다. 집이 사람에 맞게 지어져야 할 수요자 우위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집을 사람에게 맞추는 노력을 치열하게 경주해야 할 때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전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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