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커뮤니티 하나쯤은 가입했죠?” 오픈채팅방 직접 만드는 Z세대
당시 하이텔 사용자였던 나 역시도 이러한 동호회, 소모임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모던 록 소모임’ ‘호러동’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모던 록 뮤직을 좋아하는 이들의 커뮤니티였다. 이는 ‘모소모’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정말 대단한 건 이곳에서 당시의 한국 인디 록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밴드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 스파이스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호러동’의 경우는 소규모의 호러 동호회였다.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를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그러면서 일종의 ‘게시판’ 시대가 개막했다. 그렇다고 PC 통신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대형 포털 내에는 카페라는 게 존재했다. 그 카페 역시 대형 카페와 조금 더 폐쇄적인 소규모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대부분의 의사 소통은 회원들이 조회할 수 있는 게시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역시 오프라인에서 성사되는 정기모임도 있었다. 그 속에는 나름의 개인적 소통인 ‘쪽지’ 기능도 있었다.
최근 급부상한 ‘아보하’라는 트렌드를 주목해보자.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이다. 삶 속에 얼마나 큰 기대감이 없으면, 그냥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보통의 오늘이 소중해졌을까 싶은, 조금은 자조적인 트렌드이긴 하지만 이 아보하는 1인 가구 트렌드와 함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해낸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1인 가구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소비에 적극적이다. 집에서는 자신의 취향 가득한, 혼자만의 삶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밖에서의 많은 만남이 없다면, 그야말로 고독이 지배하는 삶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렇게 혼자 사는 이들이 세상의 다양한 취향 중 자신과 부합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소통과 연결이지 싶다. 홀로 사는 이들을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봐도 딱 그래 보인다. 그들의 손에는 대부분 모바일 디바이스가 들려 있다. SNS를 하기도 하고, 뭔가를 주문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취향과 맞아 떨어지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가입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행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플랫폼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지만 1990년대 후반은 PC 통신, 2000년대 초반부터는 게시판형 커뮤니티의 전성시대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더 진화하여 ‘챗 커뮤니티’라 불리는 실시간 소통 채팅방이 대세로 부상되고 있다고 한다. 만일 지금 당신이 카카오톡의 사용자라면 첫 화면으로 돌아가보라. 하단의 첫 번째 탭이 ‘친구’, 두 번째 탭이 ‘채팅’, 세 번째에 이르면 ‘오픈채팅’이라는 탭이 보인다. 바로 여기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근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유형이 오픈채팅이라고 한다. 특히 Z세대의 대다수가 오픈채팅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을 한다는 결과도 보고되었다.
‘대학내일’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경우 가입경로에서 ‘관심 키워드 직접 검색(40.6%)’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서 더 주목할 점은 “Z세대는 비교적 오픈채팅방을 직접 만든다는 응답이 높았다”고 했다. 이들이 ‘직접 오픈채팅방을 만든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라이프스타일에서 소규모 커뮤니티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그 커뮤니티 자체를 스스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더 세밀하게. 이들은 자신의 취향과 부합하는 이들을 직접 만들어 직접 모은다. 그래야만 자신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오픈채팅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게 바로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챗 커뮤니티의 지형도다.
이 새로운 세대에게 관계의 핵심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아이덴티티야말로 현 세대가 추구하는 관계의 핵심이다. 지금 챗 커뮤니티를 탐색해보라. 운동, 독서, 공예 등의 취미는 물론이고, 아이돌, 캐릭터 등과 같은 취미 기반도 많다. 재테크, 여행, 육아 등의 관심 분야도 즐비하다. 여기까지는 사실 과거와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 소규모 커뮤니티를 왕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과거에는 소모임에도 회장이 있었고, 총무도 있었다. 어떨 때는 그 속에서 수직적 관계로 구축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지금의 챗 커뮤니티는 그때와 다르다고 보면 된다. 일단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 뭔가 강압적이거나, 일방적인 톱 다운 형태의 커뮤니티 유지를 참지 못하는 세대 특성도 한몫한다. 그러니 몇 년 전 트렌드 용어였던 ‘느슨한 연대’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 커뮤니티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몇몇 오픈 채팅방에 참여해보았다. 채팅은 비정기적으로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러닝을 주제로 한 채팅방은 마치 과거의 ‘번개 모임’처럼 임시로 오프라인 이벤트를 실행하기도 했다. 모임 성사 이후 바로 헤어지는 것도 당연해졌다. 1990년대 PC 통신 소모임과 2000년대 게시판 커뮤니티에는 클럽의 주요 목적 실천과 별개로 우정과 사랑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지곤 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의 챗 커뮤니티에는 오로지 모임이 목표로 한 것을 우선적으로 열중하는 듯했다. 만일 당신도 어떤 취향의 공유를 목표로 한다면 챗 커뮤니티에 가입하거나, 스스로 만들어보라. 그 행위가 주는 ‘아보하’가 분명이 존재할 것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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