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날, 정치와 일상이 나란히 놓인 광화문에서 (인턴기자가 현장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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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8시 40분.
탄핵 집회 현장에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었던 광화문 광장 중간은 점심 무렵부터 경찰버스와 펜스로 가로막혔다.
어쩌면 이날의 광화문이 보여준 것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광장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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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8시 40분. 경복궁역에 내렸다. 역사의 날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그곳에 갔다. 출구로 향하는 계단마다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곳곳에서 무전기 소리가 들렸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출구를 지나 경복궁 앞에 다다르자 붉은 모자와 외투를 입은 관광 안내원이 보였다. 이날 경복궁은 폐쇄됐다. 하지만 폐쇄 사실을 모르고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관광 안내원 A 씨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왜 경복궁이 닫혔냐고 물어요.”라며 “창경궁이나 종로 외곽 쪽으로 안내해 드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복궁 앞에서 미국에서 온 한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1년 반 전부터 한국 여행을 계획했다. “시위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하필 오늘이라니요.” 기자가 11시에 탄핵 결정이 발표된다고 말하자, 부부는 고개를 저으며 “시위대가 흥분할 수도 있겠네요. 얼른 떠나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4일 오전 0시, 전국에 ‘갑호비상’을 발령했다. 경찰력을 100%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제다. 서울 광화문과 한남동 관저 등 주요 지역에 경찰관 1만4000여 명이 투입됐다. 안국역 일대에는 보호복을 착용한 경찰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헌법재판소 주변 150m는 ‘진공 상태’였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골목도 경찰 버스와 펜스, 병력으로 가로막았다. 대부분의 상점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이를 모르고 골목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경찰 버스를 보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탄핵 집회 현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파로 가득 찼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 대개혁 비상 행동'(비상 행동) 등은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약 10만 명이 모이겠다고 신고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은박 담요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밤을 새운 듯했다. 시위대는 ‘윤석열을 파면하라’, ‘내란 동조 당 해체하라’, ‘우리가 승리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전 10시 52분. 탄핵 집회 현장에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회 음악에 맞춰 구호를 외치던 집회장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11시,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 주문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숨을 죽였다. 11시 22분. 헌재의 인용 결정, 윤석열 파면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모 씨(53)는 “체했던 속이 내려가는 기분”이라며 “낮술 한잔하러 간다”라고 말했다. 변 모 씨(75)는 “매일 잠을 못 잤다.”라며 “새 세상이 열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모 씨(21세)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감을 묻는 말에 “차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광장에는 환호성과 울음이 동시에 쏟아졌다.
판결 이후 광화문으로 이동하던 시민들은 경찰 통제선 앞에서 멈췄다. 오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었던 광화문 광장 중간은 점심 무렵부터 경찰버스와 펜스로 가로막혔다. 몇몇 시민은 “왜 막은 거예요? 어차피 돌아가면 갈 수 있는데”, “길 좀 터줘라.”라고 항의했다. 경찰은 “지시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동은 제한됐지만, 시민들은 별다른 충돌 없이 경찰의 지시에 따랐다.
오후 12시 10분, 경찰 버스 너머의 광화문광장은 평화로웠다. 집회 음악 소리가 먼발치에서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광장의 모습은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외침이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평온한 일상이 흘렀다. 긴장과 평온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같은 도시, 같은 광장에 서로 다른 풍경이 공존했다. 어쩌면 이날의 광화문이 보여준 것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광장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송희 인턴기자 kosh11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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