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쌀 원조한 미얀마, 한국 도움 절실”

서보범 기자 2025. 4. 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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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경 유엔난민기구(UNHCR)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 인터뷰
미얀마 중부 내륙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난 2일 만달레이에서 어린이들이 무너진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수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현재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미얀마 국민들은 야외에서 텐트를 친 채 생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동남아시아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규모 7.7 강진이 발생한 지 엿새가 지난 가운데 사상자가 8000명을 넘어섰지만 중장비가 부족해 수작업으로 매몰자를 수색하는 등 수습에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최소 1만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내전으로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곳이 많아 정확한 사상자 집계도 어려운 상황이다. 3일 미얀마 군정은 이번 지진으로 현재까지 최소 3085명이 숨지고 4715명이 부상, 341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전혜경 유엔난민기구(UNHCR)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은 지난 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미 72시간 골든타임이 지났고 현지 이재민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어려운 상황이다. 도움이 너무나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8시간이면 진입할 수 있는 거리도 25시간 이상이 걸려 구호 물품이 닿기도 어렵다”며 “특히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 탓에 수습이 늦어질수록 보건상 문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처참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AP는 건물에 매몰된 시신들이 수습되지 않고 부패하고 있어 거리에 시신 냄새가 가득하다고 보도했다.

전 본부장은 2020년 11월부터 약 2년간 유엔난민기구 미얀마 대표부 대표를 지냈다. 지진 발생 불과 사흘 전 성묘를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태국 방콕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 본부는 진앙에서 약 1000㎞ 떨어져 있지만 건물 곳곳에 금이 가고 내부 시설물도 파손돼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진앙지 ‘만달레이‘는 한국의 경주 같은 곳… 정신적 충격 커

지난달 3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한 승려가 무너진 사원의 불상 조각을 지나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진앙지에서 서남서쪽으로 약 33㎞ 떨어진 만달레이는 수도인 네피도나 양곤 등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한때 미얀마의 수도였던 곳으로 역사·문화의 도시로 꼽힌다. 전 본부장은 “만달레이는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상징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미얀마 시민들에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라며 “한국으로 치면 경주와 비슷하다. 사원이나 각종 문화재가 많아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라고 했다.

도시 곳곳의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도 끊어졌지만 수습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 본부장은 “현재도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많은 사람이 텐트를 친 채 생활하고 있다”며 “통신망도 망가져 전화나 인터넷도 잘 되지 않는다. 전기와 수도 서비스도 모두 멈춰서 간신히 식수 정도를 보급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진 당시 가족들과 떨어진 미아, 노약자도 수없이 많다고 했다. 그는 “현재 언론 등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현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본다”고 했다.

◇내전으로 국내 실향민만 360만명, 엎친 데 덮친 격

지난 2일 미얀마 사가잉에서 이재민들이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1년 2월 미얀마 군정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미얀마는 4년째 내전을 치르고 있다. 지진 발생 직전인 지난달 24일 기준 ​국내 실향민 수는 약 360만명에 이른다. 내전으로 사회 기반 시설이 망가지고 수많은 이가 살 곳을 잃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진까지 발생해 더 큰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전 본부장은 “2020년 11월 미얀마 대표부 대표로 부임했을 당시 미얀마에는 약 30만명의 국내 실향민이 있었는데, 얼마 후 내전이 터지고 급격하게 불어났다”고 했다. 그는 “출입 허가가 난 한 도시에 들어가 보니 ‘유령 도시’ 같았다. 개 한 마리도 없었다. 건물과 각종 시설은 모두 주저앉았다. 사람이 많고 왕성했던 도시가 처참히 파괴된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달쯤 지나 피난 갔던 시민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도시가 점차 회복되는 장면을 봤는데, 그랬던 도시가 지진으로 다시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일 미얀마 사가잉과 만달레이 사이 이라와디강을 잇는 다리가 무너져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6·25전쟁 당시 쌀 원조했던 미얀마, 한국 도움 절실”

지난 1일 미얀마 만달레이의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중국 구조대가 구조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미얀마 군정은 지진 발생 직후 이례적으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집권 이후 서방 국가들과 교류를 단절하고, 특히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국제 원조를 거부해왔다. 이는 군정이 이례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만큼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민국 정부도 국제기구를 통해 2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전 본부장은 “날이 갈수록 피해 규모가 커지는 만큼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6·25 전쟁 때 한국에 쌀을 원조했었다. 진앙지 인근인 사가잉 지역은 특히 쌀이 많이 나는 지대인데, 이곳을 보면서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이 쌀을 드셨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해 미얀마 실향민 100만명을 대상으로 인도주의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전혜경 유엔난민기구(UNHCR)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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