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품는 산단]①갈수록 중요해지는 외국인 근로자, 여전히 높은 ‘소통의 벽’
전국 산단에 외국인 근로자 비율 늘어
의사소통·불법 체류자 등 진통
편집자주
인구구조와 산업 여건의 급격한 변화로 외국인 근로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산업 현장에선 외국인 근로자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현장에선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의 언어 능력,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사고 등에 대한 우려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가 끌어안고 상생해야만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경제는 외국인 근로자가 소속된 현장의 모습과 목소리를 조명하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는 사례를 총 3회에 걸쳐 제시한다.
①갈수록 중요해지는 외국인 근로자, 여전히 높은 '소통의 벽'
②퇴근 후 '핫플' 된 복합문화센터…대불산단은 변화 중
③"상생은 운명…장기적으로 접근해야"
경기 안산시에서 이차전지 제조 기업을 13년째 운영하는 한모씨(48)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많다. 한국어가 미숙한 이들이 사업장에 붙어있는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작업에 나서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한씨가 안전교육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근로자들은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딴짓하거나 쪽잠을 청하는 일이 많다. 한씨는 "사업장에 붙은 기계 작동법과 안전 수칙, 안전 교육이 모두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한국어가 낯선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며 "실제로 관리 감독자가 내리는 지시를 이해하지 못해 일을 엉뚱하게 처리하거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적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경기 화성시에서 의약품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강모씨(52)는 최근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중장년층 내국인 근로자와 2030세대 외국인 근로자들 간의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로의 문화와 세대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작업 방식과 태도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어서다. 결국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몇 개월 만에 퇴사를 요구해 강씨의 속을 썩인다. 강씨는 "외국인이 없으면 당장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라 이들을 위한 기숙사와 음식까지 제공하고 있음에도 몇 개월 만에 이직을 요구하면 속이 상한다"며 "이직을 허락하지 않으면 일부러 태업하거나 집단으로 꾀병을 부려 작업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31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50만명, 취업자는 92만명에 달한다. 앞으로 국내 산업의 외국인 의존도는 계속해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통상 5만명대로 유지하던 비전문취업비자(E-9) 외국인 규모를 2022년 6만9000명으로 늘린 데 이어 지난해엔 16만5000명까지 확대했다. 올해엔 13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E-9 비자를 통해 입국할 전망이다.
이에 사업장 곳곳에선 내국인·외국인 근로자 간 갈등, 안전사고, 생산성 하락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진통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형우 중기중앙회 외국인력지원실 부부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부분 소위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이다 보니 문화적, 세대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으로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어도 잘하지 못하다 보니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몰라 중대 사고…아찔한 사업장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제조업·조선업 사업주들은 현장에서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의사소통 문제를 꼽는다.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어 능력이 부족해 사업주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에 차질을 빚거나 노사 및 근로자 간 갈등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업종 특성상 유해·위험 요인이 많은 제조업 등에서 안전 수칙과 교육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대 재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 외국인 산재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399명) 중 47명으로 11.8%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내에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가 101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약 2.4%에 해당한 것을 고려하면 5배가량 높은 셈이다. 김 부부장은 "국내 사업주 사이에선 외국인 근로자들을 두고 '한국어 시험 보고 들어온 것 맞나' 하는 하소연이 나온다"며 "한국 문화에 녹아들어 사업장에서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다 보니 근로 계약을 다 채우지 않고 한두 달 만에 퇴사하거나 회사의 일원으로 쉽게 단합하지 못하는 모습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E-9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선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해당 시험이 최소한의 생활 한국어를 검증하는 수준에 그치고 사업장에서 이용되는 실무 용어까지는 포괄하지 못해 실질적인 언어 능력을 시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국한 이후 진행되는 정부 또는 기업 차원의 한국어 수업의 참여율 역시 저조한 실정이다. 근무 시간에 진행되는 교육의 경우 사업주들의 반대로 근로자들이 참석하기 어렵고 근무 시간 외에 진행되는 교육의 경우 필수 교육 시간이 법에 규정돼 있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부 조사 결과,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민자지원센터 등 정부 사회 통합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를 학습한 비율은 8.0%에 그쳤고 '한국어를 배운 적 없다'라고 응답한 비율도 25.3%에 달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TOPIK는 최소한의 언어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며 시험을 통과한 외국인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며 "일단 한국에 입국하고 나면 생활 한국어 외에 심화 용어를 익히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자 속수무책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불법 체류자의 길로 들어서는 외국인 비율이 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법무부에 따르면 등록 외국인 중 불법 체류자 수는 2021년 38만8000명에서 2023년 42만3000명으로 2년 새 9.02% 늘었다. 특히 법무부가 고령화, 구인난 등을 이유로 발급 조건을 완화하고 선발 규모를 대폭 확대한 E-9 비자의 불법 체류자 증가 속도가 가팔랐다. E-9 비자로 입국한 근로자의 불법 체류자 수는 2021년 5만800명에서 2023년 5만6300명으로 2년간 10.82%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언어 능력, 문화 이해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단순히 E-9 규모를 확대하는 데 집중한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가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유는 체류 기간이 도달했음에도 비자를 연장하지 못한 경우, 정해진 사업장 이탈 등 다양한데 언어 능력 부족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부적응 문제가 크다"며 "선발 단계에서 언어 능력 기준을 높이고 입국 이후라도 한국어 학습, 문화 교육 등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하는 방법이 있다"고 조언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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