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소득대체율’ 깎고, 권성동은 ‘자동조정장치’ 미루고…연금 개혁 이렇게 성공했다
협상 막판 與 ‘소득대체율 40%’ 카드에 野는 물론 정부도 합심해 설득한 이유
(시사저널=변문우·강윤서 기자)
"연금 개혁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아닐까. 여야 간 악화일로 상황 속에서 처음 합의를 통해 도출한 결과물이다." "이번 협상으로 정치의 본질인 타협의 의미를 다시 새겨줬다. 22대 국회에서 사실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나마' 내세울 게 생겼다. 이번 개혁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핵심 관계자들)
2007년에 멈춰있던 '연금 개혁' 시계를 여야가 18년 만에 '힘을 모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오랜 줄다리기 끝에 보험료율은 9%→13%, 소득대체율은 41.5%→43%로 연금 개혁의 시작점인 모수개혁을 이뤄냈다. 쉽게 정리하면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이다. 일련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금 국회는 '거야의 입법폭주-당정의 거부권 행사'라는 오래된 대치 굴레에 '대통령 탄핵' 정국까지 겹쳐 여야 간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쳐져 있는 상태다. 여기에 각 당 내부적으로도 개혁의 방향타를 잡고 있는 지도부를 설득하기까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연금 개혁 합의가 이뤄진 것은 여야에 수많은 조력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에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과 복지위 소속 김남희·남인순 의원이, 국민의힘에선 김상훈 정책위의장과 복지위 간사 김미애 의원 등이 여야를 넘나들며 가교 역할을 했다는 전언이다. 이들이 서로 매일같이 물밑 소통하고 내부적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각 당 지도부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개혁의 첫발을 뗄 수 있었다.
이들이 꼽은 개혁 과정에서의 위기 순간과 터닝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여야는 각자 '당내 합의'를 이끌어내는 첫 단추 끼우기부터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개혁을 주도한 박주민 의원은 지난해 8월부터 이재명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술만 마시면 전화를 걸어 '쉽지 않은 이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 우리 당이 의석을 많이 갖고 있는데 (우리가) 이 문제에서 눈을 돌리면 누가 하겠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남희·남인순 의원도 국민연금 쟁점과 대책에 대해 이 대표와 수시로 소통했다는 전언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이 대표가 '우리가 불리해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연금 개혁을 최종 결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김남희 의원은 "다행이었던 점은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도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주장해온 기본사회와 맞물리는 정책이기도 했고, 회계사 출신 박 원내대표도 수지균형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이 대표를 설득하자 이번엔 최고위원들이 '이 문제를 꼭 지금 해야 하느냐' '연금 개혁이 표에 도움이 되겠나'라며 반대해 설득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집권여당의 입장은 더욱 난처했다.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모수개혁 대신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춰온 만큼 당내도 개혁 과제 우선순위를 놓고 입장이 엇갈리는 분위기였다. 정책위 부의장과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수영 의원은 오히려 소득대체율을 40%로 고정하는 안을 완강히 밀고 있었다. 김상훈 의장도 지난해부터 구조개혁이 먼저라고 주장해온 만큼 민주당 안을 선뜻 따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단독 처리할 수 있어 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도 딜레마였다. 국민의힘 정책위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거야에 맞서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고 전했다.
이재명도 권성동도 "유연하게 하자" 강조
결국 여야는 합의 처리 방식에 이어 '소득대체율 44%'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걸어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당시가 협상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여야 협상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은 당내 반발이 큰 만큼 소득대체율을 더는 깎기 어려웠고, 반대로 민주당은 이 대표가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가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교착상태를 양측은 어떻게 풀었을까. 박주민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과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쳐 연금 개혁 논의를 했는데 '이대론 안 될 것 같다'는 심정이 들어 이 대표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그래서 '자동조정장치를 부처에선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고 했더니 이 대표가 '그럼 소득대체율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해보라'라고 답했다. 그 직후 곧바로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연락해 '우리가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수 있으니 자동안전장치를 재고해 달라'고 했다. 이후 권 원내대표도 다음 날 아침 김상훈 의장을 불러 '우리도 유연하게 해보자'고 전했다더라."
이렇게 양당이 물밑 작업을 통해 패를 주고받으며 협상 막바지 수순에 돌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관은 끝이 아니었다. 막판 합의 직전에 박수영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소득대체율을 40%로 고정해 연마다 점진적으로 상승시키는 '정부 초기 안'을 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리며 결렬 위기가 찾아왔다. 박수영 의원 측 관계자는 "민주당이 너무 많은 요구를 하면서 복지부가 중간 단계로 합의해 줬다. 결국 정부 본인들 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라며 "그래서 막판 협의 과정에서 다시 협상안으로 올리려고 시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막판 여야와 정부까지 뜻을 모으는 역할을 김미애 의원과 민주당 복지위 의원들이 했다. 이들은 "지도부 협상 때도 들어있지 않은 내용으로 거의 막바지까지 온 협상이 결렬돼선 안 된다"며 "22대 국회에서 합의를 통한 성과를 반드시 내야 국민들한테도 면목이 생긴다"고 권 원내대표 등을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결국 '소득대체율 43%'와 '자동조정장치 미도입'을 골자로 3월20일 여야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합의문에 서명하고 18년 만의 연금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 개혁안 통과로 과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에선 반발 여진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현행 합의안이 젊은 세대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논리 속에 '세대 간 갈라치기'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이에 박수영 의원과 당 연금특위 위원들은 본회의 이튿날인 3월21일 연금 개혁안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원 특위를 사퇴하는 초강수까지 뒀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과 전용기 민주당 의원 등 3040 초당파 의원들도 단결해 "이번 개혁안의 일부를 수정하거나 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이번 개혁안이 '시작'이라는 데 의의를 두는 목소리도 있다. 반대 목소리를 냈던 3040 야권 의원 중 한 명은 "연금 개혁의 첫 시작을 이뤄냈다는 점은 의의가 있다.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반대"라며 "특위 구성을 비롯해 구조개혁 과정에서 치열하게 우리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당 지도부도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연금특위 구성에 젊은 층을 대거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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