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으로 9부 능선 넘었으나 본선 경쟁력은 ‘물음표’
월드컵 3차 예선 3연속 무승부…본선 확정, 6월로 미뤄져
(시사저널=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한걸음 다가섰다. 하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3월 열린 홈 2연전에서 모두 졸전 끝에 비기며 자력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기회를 6월로 넘기고 말았다. 오히려 조 1위를 뺏길 수도 있었지만, 경쟁팀들이 함께 미끄러진 덕에 가까스로 선두를 지킬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3월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년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8차전에서 요르단과 1대1로 비겼다. 전반 5분 만에 손흥민의 코너킥을 이재성이 골문 앞에서 왼발로 마무리해 선제골을 만들었지만, 전반 30분 박용우의 실수에서 비롯된 상대 공격으로 실점하고 말았다.
이미 닷새 전 열린 오만과의 경기에서도 황희찬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대1로 비긴 한국은 홈 2연전에서 승점 2점을 챙기는 데 그쳤다. 11월 팔레스타인전에서 기록한 1대1 무승부까지 포함하면 예선 3경기 연속 무승부다. 상대의 FIFA랭킹(요르단 64위, 오만 80위, 팔레스타인 101위)을 감안하면 23위의 한국이 거둔 성적은 더욱 초라하다.
3월 예선 일정을 앞두고 승점 14점으로 2위 이라크에 3점 차, 3위 요르단에 5점 차로 앞섰던 한국은 당초 이번 홈 2연전을 통해 남은 6월 두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본선행을 확정하겠다는 목표였다. 특히 요르단과의 맞대결에서 승리 시 그 조건이 99% 달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장 매진과 홈 팬들이 펼치는 웅장한 카드섹션에도 경기력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아시아 톱3 중 일본·이란은 이미 본선행 확정
오히려 선두를 뺏길 위기가 있었다. 다행히 이라크가 조 5위 쿠웨이트, 6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승점 1점을 챙기는 데 그치며 자멸했다. 특히 한국이 요르단과 비기고 6시간 뒤 열린 경기에서 팔레스타인이 후반 추가 시간 득점으로 이라크를 꺾는 이변이 발생했다. 천운이 도운 한국의 조 1위 사수였다. 한때 한국 A대표팀 사령탑으로 거론된 이라크의 헤수스 카사스 감독은 이 경기 직후 경질됐다.
현재 4승4무로 승점 16점을 기록 중인 한국은 B조 1위를 유지했다. 2위 요르단에 3점, 3위 이라크에 4점 차로 앞서 있다. 6월 일정은 원정에서 이라크, 홈에서 쿠웨이트를 상대한다. 이라크를 상대로 비기거나, 쿠웨이트만 잡아도 본선행 티켓이 주어지는 조 2위를 확보할 수 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래 11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대업까지 9부 능선을 넘은 상태다.
11회 연속 본선 진출은 전 세계에서 브라질·독일·아르헨티나·스페인·이탈리아 5개국만 달성할 대업이다. 그러나 최근 A대표팀의 퍼포먼스를 보면 쾌거의 기쁨보다, 본선 경쟁력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든다. 내용도, 결과도 잡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북중미월드컵부터 FIFA는 본선 32개국 체제를 48개국 체제로 확대했다. 아시아에 주어지는 출전권도 기존 5장에서 8장으로 대폭 늘어났다. 경쟁의 문턱이 한층 낮아졌음에도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조별 경쟁의 난이도도 아시아 예선 3개 조 중 가장 무난했다. A조는 이란·우즈베키스탄·아랍에미리트·카타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쟁 구도였다. C조는 강호 일본·호주·사우디아라비아에 복병인 중국·바레인·인도네시아가 모였다. B조는 한국 외에는 모두 중동세라 원정의 불편함은 있지만 충분히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문제는 한국이 1번 포트의 위용을 전혀 뽐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FIFA랭킹에서 아시아 톱3로 한국과 함께 1번 포트로 조편성을 받은 이란과 일본은 이미 본선행을 확정했다. 일본은 7차전에서 바레인을 꺾고 개최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초로 본선행을 마무리했다. 뒤이어 이란도 8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비기며 본선행에 성공했다.
특히 '숙적' 일본은 본선행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내용까지 선보였다. 반면 한국은 지리멸렬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도 감독 교체가 있었다. 한국은 지난 10번의 본선 진출 과정에서 감독 교체 없이 4년의 예선 일정을 온전히 치른 경우는 카타르월드컵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유일하다. 결국 이번 북중미월드컵에서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중도 경질되고 홍명보 감독이 취임했다.
플랜A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전술로 고전
감독 교체 과정에서 정몽규 회장 체제가 지닌 아마추어 행정도 여실히 드러났다. 선임이 두 차례나 연기되며 임시 감독 체제로 6개월을 허비했다.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과 홍명보 감독의 입장 돌변으로 대표팀을 향한 시선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문제는 홍명보 감독이 취임 후 경기력과 성적으로 이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3월에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이재성(마인츠), 황희찬(울버햄튼), 황인범(페예노르트) 등 유럽파 대다수가 소집됐다. 그러나 오만·요르단을 상대로 득점은 각 1골에 그쳤다. 유효슈팅도 두 팀을 상대로 각 3개씩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평균 점유율이 70%인데 상대 밀집 수비를 뚫어내는 공격 방법은 찾지 못한 것이다.
A대표팀은 3차 예선 8경기에서 14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1.75골을 기록했다. 일본은 경기당 3골, 이란은 경기당 2골을 넣었다. 문제의 원인은 결정력에 그치지 않는다. 공격을 만드는 완성도를 이강인·황인범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강인은 오만전 부상으로 이라크전에 결장했고, 황인범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오만전을 쉬고 이라크전에만 나섰다. 창의성을 지닌 두 선수 중 한 명만 빠져도 대표팀의 연계와 공간 창출엔 문제가 발생한다.
수비력도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7경기 중 5경기에서 실점했고, 무실점 승리는 요르단 원정 한 차례에 불과하다. 현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인 김민재가 있지만, 상대는 홍명보호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3차 예선에서 최근 5경기 연속 실점을 했는데, 공격력까지 저조해지자 A대표팀은 승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핵심 선수의 이탈과 상대 대응이라는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전술적 구조가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홍명보호의 약점이 두드러진다. 플랜A에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 최근에는 유럽과 남미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상대 전술에 반응하고, 경기 중 방식을 바꾼다. 요르단과의 8차전에서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을 최전방에 세우는 과감한 전술을 택해, 전반에 선전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효과는 30분 정도가 고작이었고, 요르단이 수비 대응을 통해 손흥민 봉쇄에 성공했다.
플랜A가 막힐 경우 전술적 변화나 위치 조정으로 맞서야 하는데 홍명보호는 선수를 갈아 끼우는 상황만 반복하고 있다. 요르단전에 황희찬·이동경·손흥민 대신 오세훈·양현준·오현규가 차례로 투입됐지만 역할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 선수 특성에 맞는 구체적 역할 부여 없이 들어가다 보니 요르단은 어렵지 않게 대응했다. 막판에는 오세훈과 오현규가 전방에 배치됐지만 높이나 결정력을 활용하는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우려는 본선 진출 이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8개국 체제로 문턱이 낮아진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것은 본선 무대를 밟는 것이나 조별리그 통과 정도가 아니다. 홍명보 감독 스스로도 "월드컵 8강 이상을 위한 경쟁력 확보"를 취임 당시 외친 만큼 본선에서 세계적인 팀을 꺾을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아시아에서도 막히고 있는 '해줘 축구'(전술 없이 선수 개인 기량에만 의존)가 세계에서 통할 가능성은 낮다. 선수 구성은 역대 최고지만, 그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본선 경쟁력엔 물음표만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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