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너마저…

황정일 2025. 3. 2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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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 메모리 생산량을 확 늘린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CXMT 공장. [사진 CXMT]
지난달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은 약 96억 달러로 준수한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50.7%였던 월평균 반도체 수출 증감률이 지속해서 둔화하더니, 지난달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중국의 추격에 이어 미국 마이크론까지 한국 반도체를 바짝 뒤쫓으면서 K반도체의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 등에 뒤처졌지만 D램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메모리 분야에서조차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했다.

당장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건 중국의 영향이 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AI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DDR5 등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의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범용 메모리인 DDR4·낸드 등의 고정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DDR4·낸드 가격 하락 이면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최대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있다.

CXMT는 지난해 DDR4 생산량을 대폭 늘려 가격 인하를 추진하면서 D램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올랐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CXMT는 범용 D램에서 물량을 쏟아내며 시장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2016년 설립된 CXMT는 특히 지난해 12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DDR5’ 양산에 돌입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중국은 한국보다 기술적으로 3~4년가량 뒤처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는데, 설립된 지 9년밖에 안 된 CXMT의 DDR5 성능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ㅍ
CXMT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독점하던 메모리 분야의 강력한 도전자로 등장한 것이다. 실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주요 외신은 중국 컨설팅업체 첸잔의 자료를 인용, D램 시장에서 2020년 0%대에 머물렀던 CXMT 점유율이 지난해 5%까지 늘었다고 보도했다. 트렌드포스는 CXMT의 D램 시장 점유율이 올해 말 12%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리서치업체 테크인사이츠의 댄 허치슨 부회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CXMT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빠른 성장세로 ‘스노볼 효과’를 만들고 있다”며 “이는 메모리 부문에서 한국이 일본을 몰아낸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메모리 분야 만년 3위였던 미국 마이크론의 추격도 만만찮다. 마이크론은 최근 차세대 메모리인 10나노(㎚, 1㎚는 10억분의 1m)급 6세대 D램 시제품을 고객사에 출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어 오던 삼성전자는 물론 지난해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6세대 D램을 개발한 SK하이닉스를 제친 것이다. 마이크론은 고객사 검증 작업을 마치면 대량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마이크론의 D램 신제품은 이전 제품보다 최대 15% 빨라졌고, 전력 소모는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년 3위 마이크론의 추격은 D램 시장을 이끄는 우리 기업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최재성 극동대 글로벌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며 “아직은 한국이 앞서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 규모가 커지고 있어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기초역량이 중국보다 낮게 평가돼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로 2022년 진행했던 기술 수준 평가에서는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은 한국이 중국에 앞서 있단 평가를 받았는데, 불과 2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정의진 KISTEP 연구위원은 “한국이 강점을 보였던 메모리 반도체조차 기초역량은 중국에 추월당했다”고 전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중국은 2014년 ‘국가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 왔다.

중국은 2014년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ICF·빅펀드)를 조성해 1기 반도체 기금으로 1387억 위안(28조200억원)을 지원했고, 2019년에는 2041억 위안(41조2400억원) 규모의 2기 빅펀드를 출범시켰다. 지난해에는 3기 빅펀드를 조성해 3440억 위안(69조4900억원)을 조달했다. 반면 우리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은 저금리 대출과 세액 공제 등 간접 지원에 그치고 있다. 중국이 빅펀드를 통해 막대한 양의 정부 보조금을 직접 주는 것과 대조된다.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반도체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연일 규제 완화를 호소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주 52시간제 예외 허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은 19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중국 업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메모리와 파운드리 분야를 추격하고 있는데 핵심 개발자들은 연장 근무를 더 하고 싶어도 규제로 인해 개발 일정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최근 반도체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지만, 연구개발직 주 52시간 근로예외 적용 조항은 배제됐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주 52시간제 예외를 고집할 게 아니라 특별법부터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 반도체 강국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써는 반도체 기업이 국가 보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정부와 기업이 연합해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기업의 어려운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hwang.je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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