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0원 찍혔지만…” 번식장 60마리 구한 주인공 [개st하우스]
지난 12일 오전, 충남 공주의 외딴 산골. 영하의 꽃샘추위에 하얗게 언 대문을 두드리자 “멍멍” 개 짖는 소리가 적막한 산중에 울립니다. 문을 여니 30여 마리의 개가 이중 철창 사이로 코를 내밉니다. 너머로는 드넓은 정원이 보입니다. 이효경씨가 홀로 운영하는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 ‘쁘띠하우스’입니다.
개들 사이를 비집고 양손에 고무장갑과 비닐봉지를 든 효경씨가 다가옵니다. 이른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청소하는 효경씨를 잠시 지켜봤습니다. 바닥 닦고, 배설물 치우고, 사료 붓고. 분주한 효경씨 주위를 개들이 구름떼처럼 에워싼 채 따라다니더군요.눈물 자국 하나 없는 개들의 상태도 눈에 띄었습니다. 털도 더없이 깔끔했습니다. 효경씨는 “모든 개들은 정기적으로 예방접종과 위생 미용을 받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진돗개나 믹스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개들은 대부분 비숑, 푸들, 포메라니안 등 체중 5㎏ 내외의 소형 품종견이 많았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효경씨는 “최근 불법 번식장에서 방치된 번식견들을 구조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안아서 털과 피부 상태를 확인해보니 허리춤에 담배로 지진 학대 자국, 반복된 출산과 수유로 인해 부풀어 오른 가슴 부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효경씨의 본업은 공예가입니다. 유기동물보호소로 활용되는 쁘띠하우스도 본래 공방이었죠. 2년 전만 해도 여유 공간에서 유기견 한두 마리를 돌보는 정도.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생명을 하나둘 받아들이다보니 공방은 어느새 사설보호소가 돼버렸습니다. 그렇게 효경씨의 손을 거쳐 입양이 성사된 유기견은 80마리에 달합니다(지난 2024년 2월 4일자 보도 ‘‘생업 접고 보호소’ 26마리 안락사 막은 주인공’ 참조).
홀로 유기동물을 구호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구조한다고 상황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조한 생명을 안전한 장소에서 돌보며 치료하고, 실내견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회성도 길러줘야 가족을 찾는 입양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효경씨는 생업도 중단했습니다. 모든 게 버거웠던 그는 지난해 충남 천안의 공공보호소에서 20여 마리를 구조한 뒤 “이게 인생 마지막 구조”라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심은 또 깨졌습니다.
지난해 12월, 효경씨의 SNS 계정으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경북 경산의 외딴 시골에 불법 번식장이 있는데 업자가 돌연 사육을 포기하면서 번식견 60마리가 방치됐다는 겁니다. 제보 영상에는 배설물과 털이 뒤엉킨 비좁은 철창 안에서 발버둥 치는 수십 마리의 번식견들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번식장은 폐업 1개월 전 남은 동물의 사육 및 처리 방안을 담은 동물처리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계획서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번식견들은 그대로 방치돼 죽거나 불법 사업장으로 넘겨져 폐기되는 게 현실입니다.
동물단체가 나서 구조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번식장 개들은 일단 숫자가 많고 여타 학대 현장에서 구조된 개들보다 건강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불결한 철창 속에서 지내며 신체적 부담이 큰 번식을 평생 반복해온 탓입니다. 치료비가 많이 들고, 입양 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관할 공공보호소에 입소한다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십중팔구 안락사 조치될 겁니다. 제보자는 수십 곳의 동물보호단체에 구조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며 효경씨에게 “다만 몇 마리라도 구조해달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효경씨는 “단체도 손대기 어려운 학대 현장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철창에 매달리는 개들 영상을 본 뒤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효경씨는 동물단체 포독라이프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 뒤 문제의 번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번식장 마당에는 개 구조용 이동장 60개가 깔렸고, 그 안에 하나둘 구조된 번식견들이 담겼습니다. 번식견들이 평생 고통받은 번식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봉사자들은 답답한 쇠철창에서 꺼낸 번식견을 품에 안으며 “고생 많았다” “이제 집에 가자”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렇게 구조된 개 60마리 가운데 22마리는 동물단체 포독마이라이프와 봉사자들이 보호하고, 38마리는 효경씨가 운영하는 사설보호소 쁘띠하우스에 입소했습니다.
구조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구조된 번식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지난 12일 개st하우스는 쁘띠하우스로 찾아가 근황을 확인했습니다.
입소한 번식견 38마리 대부분은 입양되거나 임시보호처를 찾아 떠났더군요. 쁘띠하우스에는 7마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효경씨가 꼼꼼히 돌본 덕분에 당장 입양을 가도 손색이 없는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효경씨는 “동물병원비 수천만원을 완납하자 통장 잔액이 정확히 0원을 찍더라”면서도 “좋은 집에 입양 가서 행복해하는 강아지들을 보며 구조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중에서 낯선 취재진을 겁내지 않고 품에 안기는 두 마리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번식장에서 구조된 5살 포메라니안 ‘나무’와 나비처럼 큰 귀를 팔랑거리는 4살 빠삐용 ‘테리’입니다. 두 강아지는 구조 당시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있었지만 현재는 치료가 마무리 단계라고 합니다. 3~4㎏으로 덩치가 작고 사람을 잘 따라서 실내견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다만 견종에 따른 특성을 고려해 적합한 입양자를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입양 적합도를 평가했는데요. 포메라니안은 주 보호자와 깊은 애착을 형성하는 반면 질투심이 강해 조심해야 합니다. 포메라니안 나무도 인솔자 곁에 다른 개가 다가오자 짖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애쌤은 “나무는 질투심이 강하니 다견 가정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반면 빠삐용 견종인 테리는 유순해 다른 개와의 합사가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효경씨가 견생역전을 선물한 두 견공, 나무와 테리의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포메라니안, 나무]
- 3.3kg, 중성화 암컷
- 5살 추정, 사람을 좋아하고 산책을 즐기는 등 활발한 성격
- 포메라니안 특유의 질투심이 있어, 단독 사육에 적합함
- 심장사상충 1기 치료 중 (치료 마무리 단계, 2개월 뒤 완치)
[빠삐용, 테리]
- 4kg, 중성화 암컷
- 3살 추정, 애교가 많고 잔짖음이 없음.
- 심장사상충 1기 치료 중 (치료 마무리 단계, 2개월 뒤 완치)
✔입양신청서를 작성하거나 인스타그램 문의해주세요
- 입양신청서: https://url.kr/iwxft9
- 인스타그램: @petit_poteau_house
✔테리와 나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53, 154번째 견공입니다 (109마리 입양 완료)
-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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