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尹 파면이든 복귀든 흔들림 없다”…공직 인생 50년, 한덕수의 마지막 도전 

오유진 기자 2025. 3.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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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에 ‘헌법 재판관 미임명’ 선택…“자신만의 수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바뀌어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내 경제 악화를 막기 위한 특별 조치에 나선다. 한 대행은 산불 대응에 총력을 다하는 한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F4(Finance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국내 경제정책 추진 방향을 곧 지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행은 '물가' '부동산' '자영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역점을 두고 경제정책을 펼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물가 상승 압박이 끊이지 않는 상황과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등으로 변동성이 커진 부동산 시장, 부실 규모가 커지는 자영업자 상황 등을 각별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다. 한 대행의 오랜 핵심 측근에 따르면 한 대행은 경제 상황 전반을 컨트롤하면서, 구체적인 사안은 경제 F4가 추진하는 쪽으로 지침을 전달할 계획이다. 권한대행 복귀 후 자신의 구상으로 내놓은 첫 경제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행이 강한 드라이브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헌법재판관 3인 임명' 논란을 두고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쪽을 택했다. 최상목 부총리, 이창용 한은 총재 등의 설득에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3인 재판관을 미임명했고, 탄핵소추를 받아들였다. 모두가 만류한 길을 선택한 건 50년 공직 인생 중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한 대행의 측근은 "당시 한 대행이 '전례도 없고, 법리에도 안 맞는 결정을 당파적 이유로 따를 순 없다'며 주변 만류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며 "당시 최 부총리, 이 총재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평소 한 대행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처세의 달인'으로 불리던 한 대행은 왜 공직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졌을까. 김영삼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5번의 보수·진보 정권을 오가며 총리와 주미대사 등 굵직한 공직생활을 해온 한 대행은 그동안 '무색무취'형 인물로 불렸다. 자신의 소신을 앞세우기보다는 정권의 색깔에 가급적 자신을 맞춰 맡겨진 일을 잘 수행하는 '관료형 인사'라는 평가가 뒤따른 이유다. 그러던 한 대행이 공직생활의 마지막을 앞두고 이전과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 올해 75세(1949년생)로 공직생활의 끝을 향해 가는 한 대행은 어떤 마음으로 권한대행 자리로 돌아왔을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하며 최상목 부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부동산·자영업 정책 직접 챙겨

현재 한 대행의 최우선 목표는 빠르게 정국을 안정화시켜 남은 공직생활에서 '대과(大過·큰 허물이나 큰 잘못)'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50여 년간 큰 잡음 없이 이어온 공직 인생을 '실점' 없이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다. 한 대행의 측근은 시사저널에 "한 대행이 최근 탄핵 파동을 겪으면서 과실 없이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탄핵 기각으로 위기를 넘긴 만큼 마지막까지 실점하지 않는 것이 총리로서의 마지막 목표"라고 전했다.

이에 한 대행은 3월24일 탄핵 기각으로 복귀한 직후부터 산불 진화와 치안 유지를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국정 공백으로 인한 추가 피해를 최소화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폭력 사태로 민간인 4명이 사망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보다. 한 대행은 복귀 당일부터 매일 치안 유지와 관련해 철저한 대비를 당부하고 있다. 3월25일 치안관계장관 회의에서는 "헌재 결정이 임박해지며 집회·시위 과정에서의 불법적이거나 폭력적인 행위가 발생할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며 "시설 파괴, 폭행, 방화 등 공권력에 도전하거나 공공 안녕과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현행범 체포 원칙으로 단호히 조치하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대목을 보면, 한 대행이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을 벤치마킹해 국정을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행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집무 집행정지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전 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관료 출신인 데다, 여야를 막론하고 양측 정권에서 러브콜을 받았다는 점에서 한 대행은 '제2의 고건'으로도 불린다. 당시 고 전 총리는 탄핵 촛불시위로 치안 질서가 흔들리자 직접 시민단체 대표를 만나 시위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한 대행은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키를 놓지 않을 전망이다. 고건 전 총리가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에게 경제 전권을 위임한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한 대행은 국내 경제에서는 '물가·부동산·자영업'을 키워드로, 외교·통상에서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대미 리스크를 돌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행정관료 출신인 고건 전 총리의 전략을 이어받되 경제수석비서관, 재경부 장관 등 경제 분야에 몸담아온 경력을 십분 활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 대행의 최측근은 "큰 그림은 한 대행이 그리되, 발로 뛰는 일은 경제 수장들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한 대행은 통상 전문가인 자신의 특기를 활용해 대미 리스크 해소 등에서 실력을 발휘할 계획이다. 한 대행은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상산업부 차관과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일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초석인 한미 투자협정을 추진하는 등 미국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외교통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 국무총리로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도와 한미 FTA 협상을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으나 특유의 외교 능력을 인정받아 정권 교체 이후에도 주미 한국대사에 임명됐다. 한 대행은 주미 대사를 지내며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최측근과 인적 기반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한 대행은 4월2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이른바 '지저분한 15개국'(dirty 15)에 한국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리스크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한 대행은 3월24일 대국민담화에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되고 경제 질서 재편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미 현실로 닥쳐온 통상전쟁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확보하는 데 저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마주한 최우선 과제로 통상 리스크를 꼽은 것이다.

한 대행은 연일 통상 현안을 직접 챙기는 모습이다. 3월27일 경제6단체 간담회에서도 "통상전쟁의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가진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정부와 소통하겠다"며 "우리 기업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 기업과 함께 대응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경제부총리 주재의 대외경제현안 간담회를 권한대행 주재 '경제안보전략TF'로 격상하는 등 대외적 불확실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 대행이 성 김(Sung Kim) 현대차 사장(전 주한 미국대사)을 비롯한 미국 내 인맥을 활용해 대미 리스크를 해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성사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20일 취임했으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정상과 통화하지 않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 이래 최장 기간의 소통 공백인 셈이다. 한 대행의 측근은 "최근 한미 관계는 현대차 등 민간 비즈니스가 주를 이루는 만큼 한 대행도 민간의 통상외교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트럼프 리스크 또한 민관이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행이 복귀하자 미국도 하루 만에 입장을 내놨다. 3월26일 국무총리실은 미 백악관이 "미국은 한 권한대행과 한국 정부와 협력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양국 협상에도 진전이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 대행이 물밑 조율 단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이 복귀할 경우를 대비해 상황을 만들어둔 뒤 복귀 시 정상 간 통화나 만남을 추진하고, 탄핵심판 결과 윤 대통령 파면 시에는 자신이 직접 통화한다는 계획이다. 한 대행의 측근은 "(윤 대통령) 선고가 미뤄지는 상황에서 한 대행은 '미국에 특별한 선물을 줄 수 없다면 (통화를) 서두르는 게 좋지만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탄핵심판 선고기일이 정해지는 대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24일 경북 의성군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산불 대피소를 방문해 봉사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와 통화 시점 놓고 '미묘한 계산법'

한편, 민주당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총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다만 한 대행이 탄핵소추 이전에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이상, 임기 마지막까지 미임명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한 대행에 대한 탄핵심판 판단도 미임명 강행 전망에 힘을 보탠다. 재판관 4명(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은 "한 총리가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건 헌법상 작위의무를 위반했다"면서도 "파면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위반은 아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 대행은 임기 종료 시까지 재판관 임명을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한 대행은 이 외에도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등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현안은 후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행은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과와 상관없이 한 대행의 행보는 그의 50년 공직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가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두 달가량 권한대행 체제를 이어가는 한 대행의 국정운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윤 대통령이 복귀할 경우 총리로서 개헌 후 조기 퇴진 과정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지에 대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한 총리의 측근은 시사저널에 "한 대행은 결정적인 순간에 '재판관 미임명'을 택했듯 자신만의 수가 분명히 있는 사람"이라며 "파면이든, 복귀든 마지막 승부수를 갖고 국정운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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