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해풍에 꾸덕꾸덕 말린 ‘우럭’…전골처럼 끓여내면 뽀얀 국물 ‘일품’

김보경 기자 2025. 3.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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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74·끝) 전남 목포 ‘우럭간국’과 ‘쑥굴레’
쫄깃하고 녹진한 식감 반건조 우럭살
쌀뜨물에 무·미역 넣고 소금 간만 살짝
끓일수록 색 탁해지고 특유의 감칠맛
쑥떡과 조청이 어우러진 간식 ‘쑥굴레’
물김치 곁들이면 ‘단짠단짠’ 이색 조합
전남 목포의 별미 우럭간국. 푸짐한 우럭살을 뽀얗게 우러난 국물과 함께 음미해보자. 바다의 시원함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음식 솜씨로 으뜸이라는 남도 가운데 특히 전남 목포는 맛의 도시로 소문이 나 있다. 남서쪽 항구도시의 풍성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푸근한 인심으로 푸짐히 차려내기 때문이다. 홍어삼합·낙지초무침·민어회 등 미식가들이 꼽는 ‘목포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도 여러가지다. 그중 해풍에 잘 말린 우럭을 전골처럼 끓여낸 우럭간국은 이곳이 아니면 먹기 힘든 향토 음식이다. 여기에 향긋한 쑥향을 머금은 쑥굴레까지 맛보면 목포 미식 여행이 완성된다.

우럭은 양볼락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광어와 함께 횟집에서 안 보이면 섭섭할 만큼 흔한 횟감이다. 정식 이름은 조피볼락이지만 이미 전남지역 방언인 우럭으로 더 흔히 불리고 있어 조피볼락이란 제 이름이 외려 낯설게 느껴진다. 얇게 썬 회로만 봐왔던 우럭의 생김새는 꽤 강렬하다. 머리부터 등까지 뾰족한 지느러미가 돋아 있고, 크기는 30∼60㎝로 볼락과 물고기 중에서 큰 편이다. 조피볼락의 조피(粗皮)는 껍질이 거칠다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두껍고 거친 검은빛 피부를 가졌다. 조선시대 해양생물 서적인 ‘자산어보’엔 색이 어둡고 암초 사이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고 해 검어(黔魚)로도 소개돼 있다.

우럭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주로 잡힌다. 대표적인 양식어종인 터라 사계절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자연산 우럭은 남해안에선 겨울에서 초봄까지, 수온이 비교적 늦게 오르는 서해안에선 5월까지가 제철이다. 새끼를 배기 전(우럭은 알을 뱃속에서 부화시켜 새끼로 낳는 난태성 어종이다) 제철 우럭은 살이 많고 육질도 탄탄하다. 탱탱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좋아 주로 회로 먹는다.

반건조를 한 우럭살은 쫄깃한 식감과 짭짤한 감칠맛을 지녔다.

목포에선 겨울에 잡은 커다란 우럭을 손질해 해풍에 말렸다 끼니 때 꺼내 먹곤 했다. 수분을 모두 날리지 않고 반건조를 하면 생우럭보다 쫄깃하고 녹진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음식이 우럭간국이다. 다른 지역에서 들으면 우럭의 간으로 끓인 국인가 싶겠지만 ‘간국’은 짭짤하게 간이 된 맑은국을 말한다. 비린내가 날아가고 감칠맛만 응축된 말린 우럭을 뽀얗고 맑게 끓여내는데, 조리법이 간단해 밥상에 자주 올랐다. 목포 주민들은 우럭간국을 ‘어른들이 자주 먹던 음식’ ‘어머니가 생각나는 맛’이라 설명한다.

목포역 인근에 자리한 식당 ‘어랑맛집’은 이 지역 별미란 별미는 다 있는 주민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사장 강양분씨(67)는 “우럭은 머리가 커서 50㎝가 넘어도 몸통 살은 얼마 안된다”면서 “우럭간국엔 크기가 작은 양식이 아닌 자연산을 써야 살이 두툼해 씹을 게 있고 비린내도 안 난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잡아 말린 우럭만 있다면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쌀뜨물에 우럭을 크게 잘라 넣은 다음 소금 간을 약간 하고, 미역·마늘·고추·무·양파와 함께 끓이면 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찾는 주전부리 쑥굴레. 알사탕처럼 동글동글한 쑥떡을 조청에 담가 먹는다. 목포=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강씨는 “우럭간국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입에 착 감기는 맛에 반해 밥 한공기를 다 먹고 간다”며 넓은 전골냄비를 식탁에 올렸다. 황태국처럼 뽀얀 국물에 두툼한 우럭살이 눈에 띈다. 끓어오를수록 색이 탁해지고 고릿한 냄새가 풍긴다. 맛이 올라오는 것이다. 구수한 국물을 예상하고 한입 뜨면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칼칼함이 목젖을 탁 치고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니 강씨의 설명처럼 입에 착 감긴다. 말린 우럭의 살은 짭짤한 조기구이 같고, 하얀 국물은 시원함이 일품이라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공깃밥은 볼 새도 없이 푸짐한 우럭살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한국인의 배는 공간이 나뉘어 있다고 한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단 말이다. 이름도 모양도 귀여운 목포의 간식 쑥굴레를 놓칠 수 없다. 쑥굴레는 찹쌀 고두밥을 지어 만든 쑥떡을 동부콩고물과 함께 동그랗게 뭉쳐 알사탕 모양으로 빚은 후 계피향이 나는 조청을 붓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음식이다. 목포 토박이 박선우씨(53)는 “어릴 때 분식집에서 파는 쑥굴레를 많이도 사 먹었다”며 “지금도 가끔 추억의 맛을 보고 싶을 때 찾게 된다”고 말했다. 70년 넘게 운영 중인 식당 ‘가락지죽집’에선 소복이 담은 쑥굴레와 홍갓을 넣은 알싸한 물김치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고물은 소금 간만 해 조청에 푹 담가 먹어도 많이 달지 않다. 목이 막힐 때쯤 물김치를 한모금 들이켜면 ‘단짠단짠’ 조합을 즐길 수 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을 맡으면 우럭간국이 생각나고, 봄기운이 느껴지면 쑥굴레가 떠오를 테다. 향토 음식은 단순한 별미가 아니라, 다시금 그곳을 찾게 되는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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