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 만개한 서강준과 캐릭터를 갖고 노는 김신록('언더커버 하이스쿨')

박진규 칼럼니스트 2025. 3. 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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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하이스쿨’은 졸작이지만 서강준과 김신록만큼은 인정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고종황제의 사라진 금괴를 찾기 위해 국정원 요원 정해성(서강준)이 고교생으로 위장해 병문고등학교에 잠입한다. 그런데 이 병문재단 이사장 서명주(김신록)는 사이코패스 같은 존재다. 이어 금괴를 둘러싼 정해성과 서명주의 치열한 한판 싸움이 이어진다.

아마 MBC 편성팀에서는 이 세 줄 정도의 시놉시스만 보고 <언더커버 하이스쿨>의 방영을 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 줄만으로 <언더커버 하이스쿨>는 꽤 흥미진진한 구성이기 때문이다. 학원물, 보물찾기, 사이코패스 악인 등 흥행의 막강 키워드들이 포진해 있다. 못해도 본전은 할 만한 드라마라고 봤을 것 같다.

실제로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초반 4회 정도까지는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줬다. 학원물과 스파이물 특유의 B급 유머도 재밌었고, 금괴에 대한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은근히 코믹과 미스터리를 잘 버무린 볼 만한 드라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이후 고점을 찍는 대신 중반부터 하향세로 돌아섰다. 정해성과 오수아(진기주)의 로맨스가 뜬금없이 메인으로 펼쳐지면서 전개의 흐름을 끊은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탄탄했다면, 그깟 로맨스 그냥 귀엽게 봐 줄 만도 했다. 궁금의 문제는 그게 아니다. 금괴 찾기 전개와 병문재단의 비밀, 국정원의 암투 등의 거대한 사건들이 너무 식상하고 쉽게 흘러가는 게 문제였다. 스파이, 학원, 모험의 미스터리를 너무 쉬운 방식으로 풀어버리면 시청자가 순식간에 유치하게 생각한다. 여기에 중반 이후 신파적인 휴머니즘까지 끼얹으면서 초반의 기세가 확실히 수그러들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 나온 이유는 있다. <언더커버 하이스쿨>는 밀고 나가는 힘은 없지만 몇몇 코믹한 장면의 잽은 좋았다. 특히 정해성과 요원들 사이에 오고가는 '허무개그' 같은 코믹한 장면들이 그나마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해 준 셈이다.

거기에 주연 서강준과 김신록의 연기도 이 드라마가 폭삭 망하지 않은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두 배우는 개연성 없는 전개에 설득력 있는 연기로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이끌었다. 미남배우에서 시작한 서강준은 전형적인 로맨스물의 남자주인공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JTBC <제3의 매력>에서는 '너드남'을, KBS <너도 인간이니?>에서는 AI로봇을 연기하면서 연기의 폭을 넓혀왔다.

<언더커버 하이스쿨>의 정해성을 통해 서강준의 이런 연기력이 꽃피운 느낌이 확실히 든다. 이 드라마는 개연성 없는 전개를 빨리빨리 진행시키면서 정해성에게 다양한 캐릭터를 요구한다. 정해성은 쌈마이 양아치도 되고, 진지한 국정원 요원도 되고,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진 소년도 되고, 냉정한 킬러 같은 모습도 보여야하고, 섹시한 텐션도 지녀야 하고, 로맨스남의 전형도 보여줘야 한다.

서강준은 1980년대 홍콩 첩보물의 남주인공 같은 얄팍한 정서 위에 이런 다양한 상황의 성격을 얹어내면서 훌륭한 배우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해성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마음에 울림을 줄 정도로 깊이가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의 연기력을 꽃피운 드라마가 슬프게도 <언더커버 하이스쿨>이라 게 전부다. 이처럼 서강준은 각 장면에 충실한 감정연기로 장르물의 흔한 남자주인공처럼 끝날 수 있는 정해성의 캐릭터를 진짜 피, 땀, 눈물이 있는 인간처럼 만들었다.

반면 김신록은 아예 캐릭터를 재창조한 수준이다. 아마 <언더커버 하이스쿨>의 제작진도 병문재단 이사장 서명주의 존재감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상상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드라마 내용만 보면 서명주는 콤플렉스 덩어리에 헬리콥터맘에 그냥 짜증만 내는 인물이다. 그 외에는 특별함이 없다. 하지만 배우 김신록의 서명주는 다르다.

김신록은 연기를 퍼즐처럼 풀어내는 배우인 것 같다. 별것 아닌 대사도 김신록의 말투와 표정을 빌리면 뭔가 미스터리하고 비밀이 숨어 있을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다. 거기에 전혀 호연 같지 않은 설렁설렁한 연기 안에 은근히 꼼꼼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정작 드라마의 후반에 이르면 고종황제 금괴 미스터리보다 김신록이 연기한 서명주의 미스터리에 더 집중이 되는 건 그런 이유다.

<언더커버 하이스쿨>는 어쨌거나 성공작은 아니다. 이야기는 부실하고 학원물, 모험물, 스파이물의 장점은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드라마는 서강준과 김신록의 호연 그리고 오수아 선생을 연기한 배우 진기주 포함 다른 조연 배우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살아 있다. 그 덕에 안 본 눈을 사고 싶을 정도로 시청이 후회되는 드라마는 또 아니라는 게, 진짜 이 드라마의 미스터리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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