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강화엔 회삿돈, 투자는 주주 돈?…한화에어로 ‘유증’ 후폭풍

허인회 기자 2025. 3. 2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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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반발 거세지자 ‘후계자’ 김동관 자사주 30억 매수
한화오션 지분 매수엔 1.3조원 투입…총수 일가 회사는 실탄 장전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3조6000억원에 달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를 놓고 후폭풍이 거세다. 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화그룹 사옥 ⓒ시사저널 최준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후폭풍이 거세다. 3조6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증시 사상 최대 유상증자 결정에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장 반응이 심상치 않다. 더구나 유상증자 배경에 한화그룹 승계가 깔려있다는 시장의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그룹의 후계자이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이끌고 있는 김동관 부회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형국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김동관 부회장이 약 30억원 규모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을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1일 종가(62만8000원) 기준 4900여 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김 부회장 등의 주식 매입 결정은 유럽의 독자적인 재무장과 미국의 해양방산 및 조선해양 산업 복원의 큰 흐름 속에서 회사의 미래 성장에 대한 확신에 따른 것"이라며 "특히 주식 매입을 통해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회사와 주주의 미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규모 유증으로 인해 불거진 투자자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3월2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방산 시장 '톱티어' 도약을 위한 선제적 투자금 확보를 명목으로 국내 자본시장 사상 최대인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증 계획을 발표했다.

2월17일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IDEX) 2025'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이 보유한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제공

7일 간격으로 벌어진 지분 매입과 유증, 관련 없다?

이번 유증을 두고 시장에선 당위성엔 이견이 없었지만 자금 조달 방식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장기 사업의 지속성 측면에서 필수적인 선제 투자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주잔고 회전율이 4.6년 수준임을 감안하면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기"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조달되는 자금은 향후 2028년까지 4년에 걸쳐 투자가 집행될 전망으로 연간 투자 목표액은 한해 2조원을 초과하지 않기에, 연간 영업이익 2조원을 상회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익 체력만으로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투자자들 사이에선 강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트럼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세계 각국의 재무장 움직임에 힘입어 급상승했다. 지난해 말 32만원대였던 주가는 3월18일 78만10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럽, 중동, 호주, 미국 등지에 전략적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해 2035년 연결기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던 터라 기대감이 한층 고조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주주들의 보유한 주식 가치를 희석하는 유증을 발표한 것이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회사의 손익과 현금 흐름이 최근 급격히 개선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번 증자를 예상한 투자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 주가가 연초 대비 121% 급등한 만큼 이번 증자가 투자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유증 일주일 전 '오너 일가' 지분 매수

투자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증 발표 일주일 전인 3월13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가 보유한 한화오션 보통주 7.3%를 1조3000억원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 매수로 인해 총수 일가 회사는 대규모 투자 자금을 회수하게 됐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부회장(50%), 김동원 사장(25%), 김동선 부사장(25%)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회사다. 한화임팩트의 지배주주는 약 52%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너지다. 앞서 두 회사는 2023년 5월 2조원 규모의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 유증에 참여한 바 있다.

이번 지분 매수는 김 부회장의 방산 부문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평가다. 그룹 내 흩어진 한화오션의 지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모았기 때문이다. 이번 매입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보유 지분율은 34.7%에서 42.0%로 늘어났다. 동시에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 매수로 인해 김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너지는 대규모 실탄을 보유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을 활용해 김 부회장의 방산 지배력을 높이는 대신 막대한 사업 자금은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 없이 유증이라는 수단을 통해 주주들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한화에너지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유증이 승계 작업의 연장선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가중되고 있다. 한화 삼형제 소유의 한화에너지는 최근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을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며 상장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자금 확보한 '승계 열쇠' 한화에너지 향후 행보는

한화에너지는 ㈜한화의 최대주주 김승연 회장(22.65%)에 이어 2대 주주(22.16%)다.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7월 공개매수에 이어 같은해 12월 고려아연으로부터 ㈜한화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서 ㈜한화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에선 한화오션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실탄 등을 통해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지분을 추가 매입할 경우 최대주주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최대주주 지위에서 ㈜한화와 합병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향후 한화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에 중요한 열쇠를 쥔 곳이 한화에너지인 셈이다.

한화 측은 이번 유증과 승계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증은 유럽 등지에서 확산하는 방산 부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라며 "미래 기업 가치를 키우는 측면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경영 활동을 승계와 연관 짓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들의 불만에 대해선 "유증이나 한화오션 지분 매입 역시 일련의 경영 활동"이라며 "오늘(24일) 주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시장에서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전거래일보다 7.48% 상승한 67만5000원에 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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