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가 위대한 이유

방민준 2025. 3. 2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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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한 프로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세인트앤드루스 북동쪽 50km 거리에 있는 키네스우드라는 마을에 비숍셔 골프클럽이 있다. 1903년 설립된 이 코스는 9홀인데도 전장 4,360야드로 파가 무려 63이다. 이 클럽은 마을 유지들이 만든 이래 지금까지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20여 년을 지나면서 그린은 비바람에 씻겨 줄어들고 벙커와 러프는 더욱 넓어져 아무도 파 플레이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난코스로 변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코스의 변화도 신의 뜻'이라는 생각에 누구 하나 코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1917년 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이주해 온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늘 자기 위주로 행동하고 플레이 중에도 난폭한 행동을 해 눈총을 받고 있던 터였다. 그가 라운드 중 짧은 퍼트를 실패하자 잔디를 발로 걷어찼다. 그 바람에 잔디가 손바닥 크기만큼 뜯겨져 나갔다. 그런데도 사나이는 손상된 잔디를 원상 복구하지 않고 그린을 떠났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한 사제가 이 광경을 보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골프클럽 회원들은 긴급총회를 열고 그를 처벌키로 결정했다. 당시 회의록에 기록된 한 회원의 발언은 골퍼의 기본 매너를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골퍼는 규칙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그 규칙은 자신이 플레이한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말아야 하며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함은 디봇 자국을 반드시 메워야 하고 벙커에 샷의 흔적과 발자국을 남기지 말고 눈에 띄는 쓰레기는 꼭 주워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줍지 않은 쓰레기를 당신이 버렸다고 의심을 받게 되면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매너가 없는 자는 골프를 칠 자격이 없다. 골프에 심판이 없는 것도 플레이어가 신사 숙녀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가 아니면 골퍼가 아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의 손자이자 골프평론가인 버나드 다윈은 이 사건을 소개하면서 "1917년 9월 밤 비숍셔 골프클럽의 허술한 오두막집에서 골프 역사에 길이 남는 기본 매너가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골프 매너에 대한 정의에서 이보다 간결한 것은 없다."고 술회했다.



 



총회 결과 만장일치로 그 사나이를 클럽에서 제명키로 결정됐다. 당시 골프 모임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바로 사회적 매장을 의미했다. 그날 밤 그는 마을에서 소리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대규모 골프장을 개발하던 한 부동산회사의 사장이 시가 주최하는 자선 골프대회에 나가 두 번의 보기를 파로 기록해 신고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세 명의 동반자로부터 힐책을 당하자 "그만 무심결에 그렇게 했다."고 변명했지만 그는 룰에 따라 실격 처리되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몇 주일이 지나 골프장 개발을 지원하던 은행이 융자 중단을 통보, 부동산회사는 도산되고 본인도 행방불명되었다. 



 



'완전한 골퍼(Perfect Golfer)'라는 명저를 남긴 영국의 헨리 뉴턴 웨더렛은 그의 저서에서 '골프에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스코틀랜드 격언을 소개하며 골프 룰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수백 년이나 앞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풍부한 추리력을 동원해 당시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볼이 있는 그대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에 합의했을 것으로 주장했다.



 



16세기 중엽, 에든버러 대성당 앞 광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벽보가 게시되었다. 



'프랜츠필드에 사는 마부 T.E. 엘리엇은 골프를 치면서 친구의 볼을 발로 차 벙커에 빠뜨렸다. 이 행위는 옆 홀에서 플레이하던 한 사제가 보았다. 엘리엇은 즉시 잘못을 사과했지만 성직자회의에서는 이 사태를 중요하게 여겨 엘리엇에게 1년 동안 광장을 청소하는 벌칙을 내렸다. 



 



속임수에 대한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제재가 심판이 없는 골프가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는 비결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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