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압수 관련성' 기준 제시…군사기밀 보관 무죄 뒤집어

성주원 2025. 3.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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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대령 집에 군사기밀 보관, 증거능력 인정
대법 "압수 당시 수사관 인지 가능 정보가 기준"
1·2심 "영장 혐의와 무관" 판단과 배치
증거수집·사용 관련성 구분해 새 기준 제시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퇴역한 육군 대령이 군사기밀 문건을 자택에 보관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압수된 문건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원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압수 문건과 영장 혐의사실 간의 객관적·인적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퇴역 육군 대령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국방전비태세검열단 검열관으로 근무하며 군사기밀을 취급했다. 이후 제12보병사단 부사단장으로 근무하다 2016년 12월 31일 전역했다. 군사기밀 취급 인가가 해제됐음에도 A씨는 검열관 근무 당시 취급했던 군사 2급 비밀(연평도서 작전현황, 대연평도 작전현황)과 군사 3급 비밀(합참예비전력운용 문건)을 개인 물품에 포함해 가지고 나와 2017년 1월부터 2018년 7월 23일까지 자택에 보관했다.

군 수사기관은 2018년 7월 20일 다른 혐의(원사 B가 A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로 발부받은 영장으로 A씨의 자택을 수색하던 중 해당 문건들을 발견해 압수했다. 이후 2019년 1월 9일 A씨의 군사기밀 보관 혐의에 대한 영장을 추가로 발부받아 다시 압수했다.

1심은 문건이 위법수집증거라고 판단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1차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B가 A에게 군사기밀 누설)과 영장으로 압수된 문건(A가 검열관 근무로 취득한 군사기밀)은 무관하다”며 “이 문건은 B의 혐의사실에 대한 간접·정황 증거도 아닌 별개의 증거”라고 봤다. 또한 1차 압수의 위법성은 2차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해도 치유될 수 없다고 봤다.

검사가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이 조사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압수된 문건을 위법수집증거로 보고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대법원은 압수된 문건과 영장 혐의사실 사이에 객관적·인적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증거 수집단계의 관련성과 증거 사용을 위한 관련성은 구분된다”며 “수사기관이 영장 집행 당시까지 알거나 알 수 있었던 사정에 비추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는 물건을 압수했다면, 이후 관련성을 부정하는 사정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이미 이뤄진 압수처분이 곧바로 위법하게 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압수된 문건이 경기도 일대를 포함한 군부대의 규모·위치·작전수행능력, 특히 부대배치현황(경기도에 위치한 특수전부대나 항공전력 배치 내용)이 담긴 합참 예비전력 운용계획 등을 포함하고 있어, 영장 혐의사실인 경기도 소재 부대개편 및 이전계획 누설과 관련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문건의 생성·취득 경위는 압수 이후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사정일 뿐, 압수 당시 수사기관이 알 수 있었던 사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압수 당시 A씨가 문건을 찢어 훼손하려 시도한 정황도 고려했으며, 2차 압수 당시 A씨의 참여권이 보장된 점을 들어 “문건을 일시 반환 후 다시 압수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압수절차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압수수색영장 집행 과정에서 관련성 판단기준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압수물의 관련성을 판단할 때 압수 당시 수사기관이 알거나 알 수 있었던 사정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증거 수집 단계의 관련성과 증거 사용을 위한 관련성을 구분함으로써 증거배제 법칙의 엄격한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때 관련성 판단에 대한 더욱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증거능력 판단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주원 (sjw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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