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인생…조연의 가치 배워” [카라얀 아카데미 그후] [인터뷰]

고승희 2025. 3. 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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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오퍼 베를린 부수석 한이제 인터뷰
2018년 카라얀 아카데미 입학해 독일행
경쟁 벗어나 진정성 있는 나의 음악 키워
오페라는 인생…조연의 가치 배우는 시간
도이치오퍼 베를린 오보에 부수석 한이제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베를린)=고승희 기자] 새처럼 지저귀고, 사랑 고백처럼 속삭인다. 오보에가 등장하면 음악은 다른 빛깔을 낸다. 포효하는 관, 휘몰아치는 현, 파괴적인 타악 사이에 부드러운 음성으로 노래하는 오보에는 때때로 누군가의 다독임 같다.

“오케스트라에서 뚜렷하게 잘 들리면서도 플루트처럼 화려하지도, (다른 금관처럼)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요. 진정성이 가지면서도 멜랑콜리한 소리가 저와 잘 맞더라고요.”

오케스트라 악기의 음을 맞출 때 2옥타브 라(A4)를 처음 부는 악기, 가장 조율하기 힘든 관악기, 호른 다음으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악기, 단단한 소리가 100여명의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악기….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면서도 튀지 않아 전체와 어우러지고, 리더쉽을 가져야할 자리에선 제 역할을 온전하게 해낸다.

음악가는 악기를 닮는다. 어쩌면 애초에 닮아있는 악기에 마음이 끌리는 지도 모른다고 연주자들은 이야기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한이제(30) 도이치오퍼 오보에 수석은 “나와 맞아 선택해 오랜 시간 연주하다 보니 오보에로 삶의 의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카라얀 아카데미와 독일…경쟁 대신 내게 집중하는 음악 배워

한이제에게 악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독일로 향한 것은 2018년이다. 그는 소위 ‘음악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예원, 예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했고, 유학을 고민하던 때에 베를린필 오보에 수석 조나단 켈리를 만나며 독일행을 결정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운영하는 카라얀 아카데미의 시험을 보면서다.

2년 과정의 카라얀 아카데미는 일종의 인턴쉽이자 대학원의 석사 과정과 닮았다. 다만 학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곳의 졸업생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경력’이 된다. 한이제 이전에도 카라얀 아카데미에 한국인은 있었지만, 그리 많던 시기는 아니었다. 서류와 1, 2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합격하면 카라얀 아카데미에서의 2년이 시작된다.

그는 “워크숍과 멘털 트레이닝, 일대일 멘토링과 같은 수업을 비롯해 베를린필과의 연주, 아카데미 연주 등의 일정이 유연하게 이어진다”고 했다. 당시 한이제는 카라얀 아카데미와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병행했다.

카라얀 아카데미 재학 시절엔 사이먼 래틀 음악감독(2002~2018)과 키릴 페트렌코 음악감독(2019~)을 동시에 경험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한이제는 “키릴 페트렌코 지휘자가 온 뒤 카라얀 아카데미와의 첫 프로젝트가 오페라였다”며 “오페라로 배울 수 있는 테크닉과 오페라 안에서의 음악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도이치오퍼 베를린 오보에 부수석 한이제 [본인 제공]

아카데미에서의 2년은 ‘학생과 프로 사이’에 놓인 연주자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학생’이라는 ‘프리패스’권을 가진 시기이기에 “해보고 싶은 음악적 시도를 마음껏 그려가는 기”이기도 하다.

한이제는 “베를린필의 뛰어난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를 하며 음악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며 “내가 하고 있는 이 음악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시시각각 느끼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때였다”고 돌아본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의 음악 교육을 받아온 그에게 7년 간의 독일 생활은 음악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가져다줬다. 음악 분야라고 한국의 일반적 교육 방식과 다르지 않다. 학생 시절엔 예고와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중심의 교육에 매진하고 이후에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완벽주의 연주에 우선순위를 둔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또래 학생들의 연주를 듣다 보면 어떻게 손이 저렇게 안 돌아갈까 싶어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어요. (웃음) 테크닉이라고는 하나도 없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안엔 기계처럼 완벽한 연주를 익혀야 했던 환경에선 갖지 못한 진정성 같은 것이 있더라고요.”

그는 “독일 교육에선 등수가 없다”고 했다. 일등부터 마지막 석차까지 줄세우기를 하지 않는 이곳에선 ‘맞다, 틀리다’의 피드백 대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며 모든 해석과 방향을 인정해준다. “설사 연주력이 부족할지라도 장점을 먼저 발견해준다”고 한다. 굳이 콩쿠르에 나가 경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이곳에선 “각자의 점수를 받아들고 나에게 집중하는 음악”을 하게 된다. 경쟁에 치여 자존감을 해칠 일이 없기에 단단한 내면이 다져진다. 현재의 연주가 ‘나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만의 음악’을 해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교육에서 체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지금은 이 사람이 최고였다 할지라도 때마다 최고는 달라질 수 있어요. ‘항상은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이곳에서 배웠어요. 그리고 예술은 시대와 취향의 차이일 뿐 사실 최고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인드를 다져가게 된 때였어요.”

도이치오퍼 베를린 오보에 부수석 한이제 [본인 제공]
“오페라에 담긴 우리 인생…조연의 가치 배워”

도이치오퍼 베를린(베를린 독일 오페라 극장)을 선택한 것은 오페라를 향한 애정 때문이다. 경쟁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 일등 지상주의를 체득해온 그에게 오페라는 삶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오페라엔 우리의 인생이 있다”고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음악가들 중엔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있어요. 한국 교육의 특성상 1등을 향해 달려야 하고, 1등이 아니면 삶이 버거워지기도 하고요. 사실 제게도 그런 강박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늘 일등을 해야 하고, 솔로가 돼야 하고, 유명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인생의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오페라를 연주하며 그의 세상은 달라졌다. “오페라 안에 숨은 무수히 많은 역할을 만나며 주연, 조연을 떠나 모든 역할이 소중하고 없으면 안되는 존재”라는 점을 알아가게 됐다.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서 인생을 담아낸 무대를 만들며 “조연의 가치와 2, 3등의 소중함”을 배운다. 그는 “주인공, 일등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 동메달이 있기에 금메달이 있다는 것, 메달의 색깔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카라얀 아카데미와 베를린에서의 학업이 ‘나의 음악’으로 향하는 과정이었다면, 도이치오퍼는 음악 안에서 ‘나의 존엄’을 찾고 ‘삶의 다양성’을 배우는 시기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이제는 팬데믹으로 인해 2년 과정의 카라얀 아카데미에 3년간 다니고, 베를린에서 석사 과정을 하며 2022년 도이치 오퍼에 정단원으로 입단했다. 4년차인 현재는 오보에 파트를 이끄는 부수석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 음대에서 박사 과정도 병행 중이다. 매일 새로운 오페라가 올라가는 도시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일하는 ‘직장인’인 만큼 일정이 빽빽하다.

“오페라 하우스는 매일 연주가 있어요. 1년 365일까진 아니지만, 일주일에 네 번은 연주를 하게 돼요. 리허설도 보통의 관현악단과는 달리 하루에 3~3시간 30분 정도고요.”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유명한 오페라는 리허설 없이도 완벽한 음악을 만든다. 모든 단원들이 각각의 오페라를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이제는 “같은 것을 깊이 있게 파는 것도 재밌지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며 “어느새 늘 새로움이라는 도파민에 중독됐다”며 웃었다.

음악가로의 바람은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시기마다 맞는 음악을 평생 하고 싶다”고 한다.

“열정 넘치는 20대엔 주인공처럼 장악하는 음악을 했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좀 더 편안한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하는 음악을 지향해요. 조연일 때는 조연으로, 주연일 때는 주연이 돼 그 자리에 맞는 음악을 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40대엔 또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모르죠. 더 나이가 들어도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고 그 시기에 맞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시기마다 달라질 음악이 기대가 되고, 그 다름으로 인해 계속 음악을 하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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