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연 거부' 테츨라프 "미국이 민주주의 배신했단 감정 들어"

박원희 2025. 3. 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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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가치 전달하는 수단…관객과 교감하는 연주 추구"
5월 국내 리사이틀서 브람스 등 연주…"작곡가 수크 조명하고 싶어"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Giorgia_Bertazzi. 마스트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음악이 단순히 연주회에서 즐기고 집에 가는 것으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향한 배려와 평등, 연민 등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반발해 계획했던 미국 공연을 취소했다.

오는 5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내한 공연을 하는 테츨라프가 지난 21일 국내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미국 공연을 취소하게 된 배경과 이번 공연 소감을 밝혔다.

그는 미국 공연 취소에 대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면서도 "미국 내 점점 번져가는 공포 등을 볼 때 결코 공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테츨라프는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예로 들었다.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는 곡을 만들었다가, 나폴레옹이 황제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악보 앞에 쓴 헌사를 지우고 제목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테츨라프는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고 자신의 곡에서 자유, 평등의 가치를 주장했던 작곡가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런 가치들을 찾을 수 없다"며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서) 민주주의가 배신당했다고 느낀 것처럼, 우리도 현재 미국의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배신당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정치 상황, 진보냐 보수냐 이런 것에 관해 얘기한다기보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덧붙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Giorgia_Bertazzi. 마스트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테츨라프는 독일의 간판 연주자로 꼽힌다. 1990년대 초반 쇤베르크 협주곡 연주로 주목받기 시작해 베를린 필하모닉, 드레스덴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상주 음악가로 활동해왔다. 2019년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되는 등 한국과도 친숙하다.

테츨라프는 "작년에도 서울시향과 연주회를 하고 실내악 연주회에도 참여했다"며 "체류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한국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요제프 수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소품',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신화',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키벨리 되르켄과 함께한다.

테츨라프는 "브람스의 소나타는 낭만주의와 독일 전통을 잇고 있는데, 매우 와일드한(거친) 면모도 갖고 있다"며 "수크는 자기만의 길을 꿋꿋이 이어갔던 작곡가지만 많이 조명받지 못했다. 이번에 수크의 곡을 첫 번째 곡으로 선택해 좀 더 조명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Giorgia_Bertazzi. 마스트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테츨라프는 연주자들이 통상 선호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등의 고악기 대신 현대 악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예전 악기나 현대 악기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블라인드 테스트(눈을 감고 시험하는 것)를 해봐도 고악기인지 현대 악기인지 구분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악기인지, 현대 악기인지는 큰 관심이 없다. 저와 잘 맞는 악기를 선택해서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테츨라프는 평소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소신도 밝혀왔다.

그는 "내 이야기가 아닌, 작곡가의 이야기를 내 감정과 연주를 통해 전달한다는 것"이라며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작곡가의 삶이나 그의 주변을 바라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테츨라프는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깊이 탐구해 곡의 의도를 알게 되면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고 부연했다. 악보에 충실하면 해석의 자유가 줄어들고 곡에 갇힌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인식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Giorgia_Bertazzi. 마스트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관객과 교감하는 연주회를 하고 싶다는 소망도 비쳤다.

"작곡가가 전하고자 했던 의도가 깊이 전달돼 관객이 기쁨을 느낀다거나 눈물을 흘리는 연주회가 성공적인 연주회라고 생각해요. 사람에게는 감정이 표출되는 게 중요합니다. 관객들이 연주회장에 와서 객석에 앉았을 때 내가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연주입니다."

encounter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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