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선 비상…서커스, 숨막히는 화려함에 빠지다
저글링 등 15가지 곡예…관람객 연 15만명 넘어
쳇바퀴서 펼쳐지는 아찔 묘기 ‘생사륜’ 공연 백미
단원 국적 다르지만 예술·전통성에 입소문 여전
고된 연습으로 빚어낸 무대…남녀노소 환호성
여성 곡예사가 붉은 천 하나에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10m 상공으로 번쩍 올라간다.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처럼 하늘을 한바퀴 돌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려 한참을 버틴다. 몸에 둘둘 감은 천을 휘리릭 풀면서 뚝 떨어지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우아하게 착지한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객석에선 탄성이 나온다. 이 시대의 마지막 서커스단, 올해 창단 100주년을 맞은 동춘서커스단의 공연 중 한 장면이다.
16일 오전, 눈발이 날리는 야속한 3월 날씨를 뚫고 경기 안산 대부도에 있는 동춘서커스 공연장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공연장 입구에선 ‘Since 1925(1925년부터) 명불허전 명품공연’을 펼치는 ‘대한민국 최초이자 마지막 서커스단’이라는 화려한 홍보 문구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38년째 동춘서커스를 이끄는 박세환 단장은 “서커스는 옛 향수를 느끼는 할아버지·할머니만 보러 오는 게 아니라 3대가 즐기는 종합예술”이라며 “맨몸으로 선보이는 곡예를 실제로 보면 누구나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90분짜리 공연은 15가지 곡예로 꾸려졌다. 곡예사 여럿이 철봉에 매달려 공중을 걷듯이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쌍철봉’, 모자를 3개씩 들고 익살스럽게 이리저리 던지고 받는 ‘모자 저글링’, 순식간에 옷과 가면을 바꾸는 ‘변검변복’ 등 현란한 묘기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아찔한 고난도 곡예가 펼쳐질 때면 환호성이, 모자를 놓치는 사소한 실수에는 응원의 박수가 터졌다. 어른들은 아이처럼 신이 났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고역인 아이들은 한계에 다다른 표정이다. 때마침 등장한 피에로가 아이들에게 풍선을 하나씩 선물해주자 객석에 활기가 돌았다.
형강도 공연기획팀장은 “공연 성수기든 비수기든 가족 단위 관람객과 아이들을 위한 ‘피에로 마술’, 중장년이 선호하는 ‘서커스 발레’ 등은 빼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연의 백미는 ‘생사륜(生死輪)’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커다란 수레바퀴 안에서 곡예사 두 사람이 묘기를 펼치는데, 이름 그대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바닥에 안전 매트가 깔리자 곡예사 두 사람이 마주 본 두 바퀴의 안으로 들어간다. 바퀴 안에서 달리는 것도 위태로운 모양새인데, 회전 속도가 붙자 한 사람이 바퀴 위로 올라간다. 돌아가는 바퀴 위에서 펼쳐지는 저글링과 줄넘기가 아찔하기만 하다.
관람객 신지원씨(70·경기 파주시 금촌동)는 “큰 기대 없이 왔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 깜짝 선물을 받은 듯하다”고 했다. 동춘서커스의 관람객은 연간 15만명이 넘는다. ‘동춘서커스가 아직도 살아 있다’ ‘가보니 볼 만하다’는 입소문을 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다. 10여년 전부터 한국인 곡예사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하자 중국 공연단 소속 곡예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이날 무대에 선 곡예사 20여명은 모두 중국 산시성에서 왔다. 중국의 예술학교에서 8∼9세 때부터 서커스를 익힌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이 대부분이다. 몇 안되는 베테랑이 생사륜 같은 고난도 곡예를 맡는다. 이날 실수 없이 생사륜을 선보인 경력 20년의 곡예사 송장로씨(35)는 “어릴 때부터 서커스를 해왔고, 그저 무대가 좋아서 계속 하고 있다”면서 “뜨거운 박수를 받을 때 고생한 시간을 다 잊을 만큼 감동이 크다”고 했다.
서커스에서 단 한번의 실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기본적인 5분짜리 곡예 하나를 완벽하게 습득하려면 최소 2년, 고난도 곡예는 6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반복된 훈련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고된 연습과 노력 끝에 빚어진 정직한 무대. 긴 세월 관객들이 서커스에 환호를 보내는 이유도 서커스에서 인생을 엿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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