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처럼… 교회, 환대의 품으로 이웃을 품다

전병선 2025. 3. 22.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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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기자의 교회건축 기행] <24> 만리현교회
만리현교회의 카페 ‘릴리스’. 넓은 공간과 높은 천고를 자랑한다. 공간을 3개로 구분해 계단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사진 속 다락방 같은 공간이 상대적으로 가장 조용하다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이다. 서인건축 제공


서울 만리현교회(조준철 목사)는 건축적 제약을 창의적 건축의 토대로 사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교회는 재건축 건물이다. 기존 교회당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부분을 리모델링했다. 새 건물의 대예배당이 기존 건물에 해당한다. 이를 대수선이라고 하는데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건축하는 동안 별도의 예배 공간을 확보하지 않고 기존 건물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건물을 만드는 데는 장애가 된다. 자유롭게 건물 전체를 디자인하거나 공간을 배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 대예배실. 이 부분 뼈대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실내·외를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했다. 김구식 원로장로는 “강대상 왼편의 파이프 오르간은 설치할 자리를 미리 계산하지 않고 구매했는데 사고 보니 딱 들어맞아 당시 입을 모아 임마누엘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제약은 길쭉한 대지다. 교회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다. 공덕동은 도심이지만 교회는 오랜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는 곳에 있다. 교회 인근의 주택을 사들여 땅을 확보했지만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 땅들이 네모반듯하지 않다. 더구나 교회는 구불구불한 도로에 접해 있다. 대지가 평지도 아니다. 대지는 길쭉한 방향으로 높낮이가 다르다.

신축 같은 리모델링

하지만 이들 제약은 이 교회 건물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제약을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더니 다른 교회와 차별화된 교회 건물이 됐다. 먼저 800석 규모의 기존 예배당 공간이 정해진 상태에서 나머지 공간을 확보하다 보니 자잘한 공간이 많아졌다. 건물 전체에 25개 소그룹 공간이 생겼다. 기존 예배당은 감쪽같이 새로운 건물로 건축됐고 풍성한 소그룹 공간은 이 교회의 자랑이 됐다. 요즘 한국교회에선 소그룹 활동이 중시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소그룹 공간이 필요한데 대부분 교회엔 대예배당과 중예배당, 그리고 큰 공간 몇 개가 전부다.
드론으로 촬영한 만리현교회. 교회 앞부분과 가운데 곡선, 길쭉한 형태가 배의 모양을 잘 살리고 있다.


또 하나는 건축 콘셉트인 노아의 방주가 더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길쭉한 대지에 놓인 건물은 확실히 배처럼 보인다. 교회 주변 작은 주택들과 언덕, 그 위에 걸쳐 보이는 교회는 큰 배로 느껴진다. 멀리서 보면 마치 큰 선박이 언덕 위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다.

산비탈에서 올라오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교회 전면. 성경책을 세워놓은 모습이라고 했다.


왼쪽 건물 외벽은 약간 위로 솟아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 뱃머리 부분이다. 앞뒤는 두 개의 평면이 만난다. 이는 성경의 겉표지라고 했다. 성경책에서 펼쳐지는 부분을 형상화한 것이다. 평면 사이에는 대형 십자가를 매달았다. 가운데는 유선형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배의 모습을 극대화했다. 유선형은 교회에 대한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고 유선형의 벽면 아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은 이웃을 품고 환대하는 몸짓으로 작용한다. 건축적인 요소를 통해 이웃을 건물로 유입시키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나타나 있다.

지역 친화적인 교회

만리현교회 취재를 위해 담임목사와 원로장로, 건축사를 인터뷰했다. 최유철·최동규 건축사, 조준철 목사, 김구식 원로장로(왼쪽부터). 전병선 선임기자

최근 조준철 목사와 이 교회를 80여 년간 섬긴 김구식 원로장로, 교회를 설계한 서인건축 최동규, 최유철 건축가를 만났다. 조 목사는 “만리현교회는 선교적 교회, 지역 친화적인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건물 디자인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오밀조밀한 주택가에 공간적인 여유를 제공하고 이들 주택을 품에 안은 형태”라고 설명했다. 교회는 주민들을 위해 평일엔 주차장을 전면 개방하고 있다.

교회 카페도 눈에 띈다. 크기부터 다르다. 일반적인 교회 카페의 두세 배 정도다. 계단을 활용해 3개의 공간으로 구분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정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맨 위가 도서관이다. 카페는 지역 친화적인 기능을 한다. 인근에 아기자기한 카페는 많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카페는 없기 때문에 이웃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넓은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집중하고 싶은 이들, 또는 단체 모임을 하려는 이들의 핫플레이스다. 근처 숙명여대 학생들도 단골이라고 조 목사는 설명했다.

건축가는 외부인들이 카페에 쉽게 들어올 수 있게 접근로를 설계했다. 비탈길을 올라와 교회를 지나갈 때 가장 쉽고 가까운 동선이 카페 앞을 통과하는 것이다. 최유철 건축사는 “이는 카페를 알리고 카페를 찾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카페에선 미니 콘서트도 진행한다. 입구 쪽에 있는 넓은 공간을 무대로 하고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객석이다. 김 원로장로는 카페의 천고가 높아 소리의 울림이 좋다고 자랑했다.

곳곳에 특별한 공간

두란노서원 모습.

이 교회 소그룹실 이외 작은 예배실도 특별하다. 극장식으로 배치된 의자, 타원형의 넓은 책상 등은 대학 강의실처럼 생겼다. ‘두란노서원’이란 곳으로 학술 세미나 등을 위해 특화됐다. 공간 활용을 위해 대학이나 관공서에 이곳을 빌려주기도 한다. 공연이 가능한 중예배실도 있다. 무대 뒤편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무대 장치 등을 보관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도 있다. 이런 시설도 재건축으로 인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생긴 결과물이다.

교회 지하는 아이들 공간이다. 무료로 개방하는 키즈카페, 놀이시설, 어린이예배실, 맘 카페 등이 있다. 최동규 건축가는 “교회 곳곳에 오밀조밀한 공간이 많이 숨겨져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술래잡기하듯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건물에 교회의 역사를 담아

교회는 1932년 천막에서 시작해 그해 가을 교회당을 짓고 창립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많은 은혜가 있었고 교회는 부흥 발전했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교회는 복도에 역사관을 만들었다. 또 기존 예배당의 골조인 콘크리트 기둥 2개를 노출, 유리 벽으로 감싸고 벽면에 옛 사진을 동판으로 제작해 붙였다.

김 원로장로는 ‘만리현교회 창립 1주년 기념’ 사진을 가리키며 당시 함께 찍은 성도 수가 153명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153은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 그물을 내려 잡은 물고기 수다. 김 원로장로는 만리현교회 1호 성도이자 1호 장로인 김정용 장로의 아들로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조 목사는 “2018년 건축했다. 교회로서는 세 번째인 이 건물이 이웃을 환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만리현교회가 더 선교적인 교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전병선 선임기자, 서인건축 제공

글=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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