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 일어나" 근육 약해지는 희귀병…한국서 새 치료법 찾았다
국내 연구진이 유전성 희귀병인 듀센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DMD)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EZH2 유전자가 과활성화하면 근육 재생이 저해된다는 점에 주목해 이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근육 조직 손상을 줄이고 기능을 개선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특히, 기존 스테로이드 치료와 병용할 경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21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채종희 교수와 서울의대 의과학과 최무림 교수팀(제1저자: 전은영 석·박통합과정 학생)은 듀센근이영양증 환자와 동물 모델의 근육 조직을 분석해 EZH2 유전자의 과활성화가 근육 섬유화와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핵심 기전임을 규명하고, 이를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듀센근이영양증은 1968년 듀센(G.B.A. Duchenne)이 최초로 기술한 유전성 질환으로, DMD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근육이 점차 약해지고, 섬유화가 진행되는 희귀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는 운동 능력을 상실하고, 심장·호흡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차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불가능해지며, 누운 상태에서 일어날 때는 손을 사용해 옆으로 눕고, 다시 손을 사용해 앉고, 손을 무릎에 짚은 뒤 조금씩 대퇴부 쪽으로 옮기면서 서는 등반성 기립(climbing up on himself)을 한다. 이를 '가워스(Gowers) 징후'라고 한다.
말기에는 전신 근육이 위축되고, 안면근을 침범해 가벼운 장애가 발생한다. 상기도 감염 등으로 증상이 빠르게 악화하면서 보행이 가능했던 환자가 단 며칠 만에 일어설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들 환자의 주된 사망 원인은 심부전과 호흡 부전이다. 국내 환자는 약 2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주로 남아에서 발병한다. 현재 대표적인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는 염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 사용 시 근육 섬유화, 성장 장애,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어 치료적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포의 증식과 분화를 조절하는 'EZH2 유전자'에 주목했다. EZH2 유전자는 세포 성장·분화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만, 과활성화하면 근육 재생을 방해하고 섬유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EZH2 유전자의 활성을 억제하면 근육 기능이 개선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듀센근이영양증 환자, 비교적 경증인 베커근이영양증 환자, 정상 대조군의 근육 조직을 대상으로 단일핵 전사체 분석 및 공간 전사체 분석을 수행해 EZH2 유전자의 발현 수준 및 근육 섬유화 기전을 정밀 분석했다. 또한, 듀센근이영양증 동물 모델에서도 동일한 분석을 수행하여 인간 환자 샘플과 비교했다.
그 결과, 듀센근이영양증 환자와 동물 모델에서 EZH2 유전자의 과활성화가 근육 섬유화, 염증 반응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듀센근이영양증 동물 모델(D2-mdx 생쥐)을 활용하여 EZH2 억제제(GSK126, tazemetostat)를 단독 투여하거나 스테로이드(deflazacort)와 병용 투여한 후, 근육 조직의 변화와 근력 회복 효과를 평가했다.
실험 결과, EZH2 억제제를 단독 투여한 그룹에서 근육 섬유화가 감소하고, 근섬유 크기가 증가하며 정상 근육과 유사한 형태로 회복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또한, 스테로이드 단독 투여군과 비교했을 때, EZH2 억제제를 병용 투여한 그룹에서 근육 조직의 섬유화가 감소하고, 근력 테스트 결과 근력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결과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EZH2 억제제가 스테로이드 치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근육 재생을 촉진하고 근력 향상을 가져올 수 있음을 입증한 중요한 연구로, 듀센근이영양증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EZH2 억제제를 통한 치료 전략이 희귀질환인 DMD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는 "듀센근이영양증 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임상에서 상용화한 치료법이 많지 않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스테로이드 치료 효과를 높이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고,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환자 치료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무림 서울의대 의과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에선 듀센근이영양증의 발병 기전을 이해하고, 환자 치료에 기여할 수 있는 유전자 타깃을 찾기 위해 환자와 동물 모델을 활용한 연구를 진행했다"며 "이 연구 결과는 특허 출원됐으며, 추가 연구를 통해 EZH2 억제제의 임상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은영 학생(제1저자)은 "EZH2 유전자를 억제하는 약물이 스테로이드의 면역 억제 효과는 유지하면서 근육 약화와 섬유화를 줄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는 근육 질환뿐만 아니라 염증 조절이 필요한 다양한 질환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정밀 의학을 기반으로 한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 및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IF: 13.6)' 최신 호에 실렸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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