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부분휴전 첫 발…'우크라 지원 중단' 푸틴 어깃장에 험로
미·러, 에너지·인프라 30일 휴전 합의…'카드' 없는 우크라 "일단 찬성"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장시간 전화 통화를 갖고 에너지·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30일간 중단하는 첫 합의를 이뤄냈다. 우크라이나도 이에 '찬성' 입장이어서 3년 넘게 이어온 전쟁의 포성이 후방을 중심으로 잠시 줄어들게 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전면 휴전 등을 위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의 군사 및 정보 지원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에 반대하고 있어 전쟁 종식을 향한 후속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푸틴, 서방 군사적 지원 불가 주장…美 전문가 "전형적 러시아 벼랑끝 협상 전략"
외교 전문가들은 미-러 두 정상 간 이번 합의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것일 뿐, 앞으로 길고 어려운 협상 과정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필립 리커 전 미국 국무부 유럽 및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대행은 이날 워싱턴DC에서 <뉴스1>을 비롯한 한국 취재진과 만나 푸틴의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요구가 전형적인 러시아의 외교 전략이라고 짚었다.
그는 "'절대 우크라이나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주둔해선 안 된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과연 이게 푸틴이 결정할 권한이 있는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리커 전 차관보는 "이는 전형적인 러시아의 협상 전술이고, 그들이 외교를 하는 방식이다. 극단적인 요구를 하고, 마지막 순간에 완전히 포기하거나 조정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실제 휴전 상태가 되지 않으면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없기는 하다"면서 "그러나 휴전이 평화협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전화 통화는 훨씬 더 긴 과정의 시작에 있는 한 단계, 한 번의 전화 통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인들이 2014년 푸틴의 군대가 자국의 동부 및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을 시작하고 크림반도를 점령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겪었다"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쉽게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리커 전 차관보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주권을 지키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3년 넘게 싸워왔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러시아 역시 침공의 대가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고, 전쟁으로 인한 제재 등은 러시아에 큰 고통을 안겨준 만큼, 그들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리커는 그러면서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아메리카 대륙 일대를 일컫는 '서반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을 소개했다.
과거 18세기 때처럼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 서쪽 반구인 서반구는 미국이 잘 관리할 테니 유럽 대륙이 속한 동반구는 러시아가 동유럽을 관할하든, 유럽인들이 알아서 할 일로 간주하려 한다는 것이다.
리커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미국이 51번째 영토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바로 이런 경제적이면서도 영토적인 그의 야망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세 몰린 우크라이나 정말 '카드' 없나…휴전 협상, 미·러 입맛대로
이날 미국과 러시아 양국 정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상호 간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고, 러시아가 이에 응해 공격을 멈추기로 한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두 정상 간 90여 분간의 통화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0일간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했고, 푸틴 대통령이 이에 호응해 즉시 합의에 상응하는 명령을 군에 내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친(親)러시아 행보를 보여왔는데, 북한의 파병까지 등에 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공세를 펴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특히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백악관 충돌 이후 미국의 무기 및 정보 지원이 끊기고, 러시아가 공세에 나서면서 우크라이나가 궁지에 몰려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 상황이었다.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가 공격에 나설 여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명단은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 간 합의가 실행에 옮겨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백악관에서 충돌했을 때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이나 서방 지원 없이는 러시아에 대적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뼈아픈 현실이다.
비록 젤렌스키 대통령도 "찬성한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날 미-러 양국은 두 국가 간 합의 내용을 발표하면서도 우크라이나도 이에 동의해야 한다는 식의 언급은 일절 없었다.
지난 11일 미국과 우크라이나 양국이 고위급 회담을 통해 '30일간 전면휴전'에 합의했을 때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호응이 중요하다'라고 양국이 한목소리로 말했었던 것과 대조된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드론, 미사일 등 공중전과 흑해에서의 해상전에 국한한 부분 휴전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는데 미국이 오히려 전선 전체를 포괄하는 휴전안을 제시했었다.
비록 휴전의 범주는 다르더라도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공격 중단은 반길 만한 내용이나, 러시아가 에너지 인프라로 향했던 화력을 여타 전선으로 돌릴 경우 우크라이나로서는 의미 없는 부분 휴전이 될 수 있다.
푸틴이 이번 부분휴전안을 받아들이면서도 전면 휴전 등 후속 협상에 대해서는 조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곧 시작될 협상에서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예고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재무장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된다며 30일 전면 휴전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크렘린궁은 푸틴이 통화에서 외국의 군사 원조와 정보 제공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 분쟁의 격화를 막고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푸틴이 이번 에너지·인프라 부분휴전으로 여전히 전투를 이어가며 쿠르스크 수복 및 점령지 확대를 위한 시간을 벌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푸틴이 실제로는 평화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관련 보도에서 "러시아가 평화를 원한다는 징후는 하나도 없다"라는 라트비아 외무장관의 우려를 실었다.
에스토니아 외무장관도 "러시아가 그 어떤 목표도 바꾸지 않았으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체를 계속해서 지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ryupd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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