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넘어가는데 체질 바꾸라니”…‘건설업 경기부양책’ 더 급하다[세종백블]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최근 추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치솟은 공사비와 미수금 증가로 수백억원 손실로 이어지면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A건설 대표)
올들어 시공능력평가 50~200위권 중견 건설사가 연이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있다. 1월 신동아건설(58위)과 대저건설(103위)에 이어 2월에는 삼부토건(71위), 삼정기업(114위), 안강건설(116위), 삼정이앤시(122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벽산엔지니어링(시공능력평가 180위)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폐업도 적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업체는 109곳으로, 전문건설업체까지 포함하면 634곳에 달한다.
건설사의 벼랑 끝 경영이 지속되면서 후행지표인 건설업 관련 고용지표도 최악이다. 당장 지난달 건설업 취업자 수는 16만7000명 감소했다. 벌써 10개월 연속 하락세다. 취업자 수만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이들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실업급여를 가장 많이 신청한 업종은 건설업으로 신청자는 1만9200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산업의 약 30%로 가장 비중이 높은 제조업(1만8300명) 신청자보다 많다. 건설업 실업급여 신청자는 지난해 11월(1만3400명)과 비교하면 석 달 새 43% 급증했다. 상황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미분양이 늘면서 건설업계에 ‘4월 위기설’이 돌고있다. 올해 1월 전국 미분양 주택이 작년 12월(7만173가구)보다 3.5% 증가한 7만2624가구까지 늘었다.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인식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2만2872가구에 달한다. 2013년 10월(2만3306가구) 이후 11년3개월 만에 가장 많다. 악성 미분양의 80%가량은 지방에 몰려 있다. 최근 지역을 대표하던 건설사가 잇달아 무너지는 원인으로 풀이된다. 건설사의 폐업보다 중요한 것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적지않은 이들이 생계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현실과 동 떨어진 처방이라는 비판이 높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이날 건설산업 노사와 현장간담회에서 “정부는 청년층의 취업기피, 숙련인력 부족, 고령화, 산재 등 건설업 일자리의 복합적인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월 27일 ‘제5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기본계획은 건설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청년들이 건설업 취업을 외면하고 있으니, 기능등급제를 도입해 숙련기능인의 임금을 높이고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민간에도 도입해 임금체불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당장 숨 넘어가는 마당에 체질을 개선하라는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정부가 내놓은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은 5년마다 발표하는 중장기 계획이지만, 건설사들이 심각한 자금난으로 연쇄 부도가 현실화하면서 건설사의 ‘채용여력’이 사라진 현실을 타개할 처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건설 투자 지표를 보여주는 올해 1월 건설기성(공사 실적)은 건축(-4.1%)과 토목(-5.2%) 모두 작년 12월보다 감소했다. 건설기성은 1년 전보다 무려 27.3% 줄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0월(-27.6%) 후 26년3개월 만에 감소폭이 가장 컸다.
정부의 잘못된 처방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 8월 정부는 건설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적극 주선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 가입률을 높이는 대책을 내놨다. 당연히 상황은 계속 악화했다. 그나마 건설업에 대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기대했지만, 이 역시 없던 일이 됐다. 2022년 정부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여객운송업 등에 대해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지정, 효과를 봤지만 건설업은 일용직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지정을 포기했다. 이 탓에 지난해 7월 대우산업개발의 건설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 불발하면서 올해 3월초까지 고용 지원 업종 신청은 1건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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