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0일 휴전' 압박에도… 푸틴, 군복 입고 “우크라軍 몰아내라”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5. 3. 1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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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방문, 휴전 거부 메시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 군복 차림으로 쿠르스크의 전쟁 지휘소를 방문해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내줬던 쿠르스크 상당 부분을 탈환한 데 이어 완전한 수복을 노린다. /AFP 연합뉴스

“쿠르스크 지역을 가능한 한 빨리 해방하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30일 휴전’에 동의한 지 하루 만인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내놓은 첫 반응이다. 그는 이날 군복 차림으로 러시아 서남부의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쿠르스크의 러시아군 지휘소를 찾았다. 이어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으로부터 전황을 보고받은 뒤 “가능한 한 빨리 이곳에 있는 적을 물리치고 쿠르스크 지역의 영토를 완전히 해방하라”고 지시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개시 이후, 푸틴이 군복을 입고 최전선을 찾은 모습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미국 주도로 전쟁 종식을 위한 휴전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미국·우크라이나의 휴전안을 쉽게 수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쿠르스크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선 쉽게 휴전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 쿠르스크 지역의 러시아군 지휘소를 방문한 모습. /AFP 연합뉴스

러시아 내부에선 휴전이나 일시적 정전은 우크라이나군에 회복할 시간을 주고, 이 기간 동안 러시아를 서방의 다양한 외교적 압박에 노출시켜 불리한 협상으로 이어진다는 시각이 강하다. 푸틴은 “러시아는 갈등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종식을 지지한다”며 휴전이 아닌,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러시아 귀속을 전제하는 종전 협상을 요구해왔다.

러시아 내 강경파의 반발도 나오고 있다. 푸틴의 이념적 ‘멘토’로 알려진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은 1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휴전에 대한 러시아의 대답이 ‘아니오’일 것을 알면서도, 서방의 주전파들이 ‘공은 러시아에 넘어갔다’는 만트라(주문)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우크라이나와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 회담을 갖고 30일간의 휴전안과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복원, 조속한 광물 협정 체결에 합의했다. 또 미국이 직접 이 휴전안을 러시아로 가져가 설득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프랑스 등도 이번 합의를 반기며 “휴전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에 가세했다.

그래픽=이진영

그러나 러시아는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 오전 “휴전안에 대한 미국의 상세한 설명을 들어봐야 한다”고만 했다. 그리고 불과 수 시간 만인 이날 오후 푸틴이 쿠르스크를 전격 방문해 “우크라이나군을 빨리 몰아내라”고 채근한 것이다. 러시아 매체들은 “푸틴이 이날 예정된 경제 관련 회의를 연기하고 쿠르스크로 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즉각 대표단을 러시아로 급파했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13일 오후 “(푸틴에게 휴전안을 설명할)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가 휴전안을 받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러시아에 매우 나쁜, 파괴적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추가 압박도 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저녁 늦게 국제 전화를 할 수 있다”며 위트코프 특사와 만난 뒤 트럼프와 직접 대화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푸틴이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불화를 즐기던 상황에서, 갑자기 서방의 협공을 받는 상황으로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백악관 정상회담 파국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중단하며 러시아를 미소 짓게 했다. 하지만 젤렌스키가 트럼프에게 사과 친서를 보내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자세를 낮추면서 양측 갈등은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양국이 휴전안까지 마련하자 분위기가 역전돼버렸다. CNN 등 미국 매체들은 “푸틴은 트럼프를 잘 안다. 휴전 제안을 거부해 트럼프의 ‘평화 노력’에 어깃장을 놓고 싶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협상 빌미를 줄 휴전 역시 원치 않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도네츠크·자포리자 등 자국의 러시아 점령지 일부와 맞교환할 ‘협상 카드’로 쿠르스크에 진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쿠르스크 내 우크라이나 점령지는 약 400㎢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약 11만㎢)의 27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70여 년간 단 한 번도 외국군의 진주를 허용한 적이 없는 러시아 본토란 상징성이 있다.

이 때문에 쿠르스크는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한 위대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푸틴 입장에선 작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땅이다. 30일 휴전과 함께 평화 협상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가 푸틴의 이런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다. 푸틴의 쿠르스크 방문은 이런 불만을 미국에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트코프 중동 특사와도 이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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