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 나선 유럽 국가들, ‘K-방산’에 눈 돌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2025. 3.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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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수준 성능에 조기 인도 장점…느리고 비싼 ‘유럽 방산’과 대비

최근 비세그라드 그룹(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국가들이 주목을 끌 만한 국방·방위산업 행보에 나섰다. 로베르트 칼리냐크 슬로바키아 국방장관은 2월 24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아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장관과 회담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국방·방산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서명 즉시 효력이 발휘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비세그라드 그룹에 속하는 두 나라 간 협력 역사는 길고 그 분야도 광범위하다. 이번 합의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내용 때문이다. 급속 재무장에 나선 두 나라가 대규모 무기 공동생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선 폴란드는 슬로바키아로부터 기술을 지원받아 포병용 탄약 공장을 건설하고 포탄 공동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슬로바키아도 폴란드로부터 기술과 부품, 인력을 제공받아 다양한 신무기를 함께 생산하기로 했다.

한국 K2 전차 [육군 제공]
폴란드 현지화 모델 K2PL 전차의 이미지. [현대로템 제공]

폴란드-슬로바키아, K2PL 공동생산 합의

이번 국방장관 합의를 통해 양국이 공동생산하기로 한 무기체계는 전차·장갑차·지대공미사일이다. 장갑차의 경우 양국 모두 사용하는 파트리아 8륜 장갑차를 기반으로 폴란드제 포탑을 얹은 보병전투장갑차가 공동생산 품목이다. 지대공미사일은 폴란드가 최근 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있는 피오룬 보병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을 함께 생산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양국이 공동생산하기로 합의한 무기 중 가장 수량이 많은 품목은 놀랍게도 한국제 K2 전차의 폴란드 현지화 버전인 K2PL이다.

폴란드는 2022년 K2 전차 1000여 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에 대량 공급한 구형 전차의 공백을 메우고자 K2 전차 180대를 K2GF(Gab Filler)라는 이름으로 우선 도입하고 있다. 폴란드는 2월 22일 기준으로 K2GF 180대 중 98대를 인수했다. 2026년까지 180대를 전량 인수한 뒤 현지화 개량형인 K2PL 도입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다만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아직 K2PL 생산 계약은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다시 말해 슬로바키아가 구매하겠다고 밝힌 전차는 아직 생산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모델인 것이다.

슬로바키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지만 예산 부족 탓에 아직도 옛 소련 규격의 무기를 적잖게 운용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슬로바키아는 T-72 전차 30대와 BVP-1 보병전투장갑차 30대를 우크라이나에 기증해 기갑 전력이 사실상 반토막 났다. 현재 슬로바키아군은 독일로부터 받은 구형 레오파르트 2A4 중고 전차 15대와 러시아제 구형 T-72M1 전차 30대를 함께 사용 중이다. 이처럼 구형 혹은 옛 소련제 장비를 쓰는 슬로바키아는 나토로부터 강한 무기 교체 압박을 받고 있다. 나토 장비와 호환되지 않아 유사시 연합작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슬로바키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76% 수준의 국방예산을 지출했다. 그 후 미국과 유럽 우방의 강한 압박으로 2023년 GDP 대비 2%, 2024년 2.2%, 2025년 2.3%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했다. 이렇게 늘어난 예산을 바탕으로 슬로바키아는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상군 현대화에서 최우선 과제인 전차 교체 사업의 경우 독일제 모델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바 있다. 독일이 최신 버전인 레오파르트 2A8 전차 공동구매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가 독일과 구매 협상을 진행한 레오파르트 2A8 전차는 독일은 물론 헝가리, 노르웨이, 네덜란드도 도입한 레오파르트 2 시리즈의 최신 개량형이다. 기존 레오파르트 2A7+에 신형 복합장갑과 전자장비, 능동방어장치를 통합한 이 전차는 미국 M1A2 SEP(V)3, 한국 K2와 함께 서방 세계 최강 전차로 평가된다. 그만큼 수출 실적도 좋지만 슬로바키아는 이 전차 도입을 포기했다. 슬로바키아 처지에선 너무 비싸고 대기 기간도 길기 때문이다. 최근 계약 사례들에서 확인된 레오파르트 2A8 전차의 대당 가격은 400억~5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2023년 2월 노르웨이가 체결한 계약 내용을 보면 54대를 도입하는 데 대당 약 478억 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올해 1월 스웨덴이 44대를 주문했을 때는 대당 약 502억 원이었다. 지난해 말 최종 불발되긴 했지만 이탈리아와 판매 협상 때는 132대를 구매하는 데 대당 900억 원 넘는 가격이 제시된 바 있다.

‘규모 경제' 없는 독일 레오파르트 2A8

레오파르트 2A8이 비싼 이유는 '규모 경제'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차는 레오파르트 2라는 이름만 공유할 뿐 이전 모델과는 별개인 전차다. 이전 세대인 레오파르트 2는 3000대 이상 생산된 베스트셀러였다. 반면 레오파르트 2A8은 독일(18·이하 대수), 헝가리(44), 스웨덴(44), 리투아니아(44), 네덜란드(46), 노르웨이(54), 체코(77) 등 7개국 발주 물량을 모두 합쳐도 327대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K2 전차는 한국(410), 폴란드(1000) 두 나라에서만 1400대 넘는 물량을 도입했다. 나아가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페루의 전차 소요까지 더하면 2000대 이상이 될 가능성마저 있어 보인다.

레오파르트 2A8은 출고 대기 기간도 무척 길다. 경쟁 모델인 한국 K2 전차의 폴란드 수출 사례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K2 전차의 경우 2022년 8월 계약해 초도 물량 10대가 그해 12월 7일 폴란드에 도착했다. 이후 계약 체결 30개월 만에 전체 계약분 180대 중 54%인 98대가 폴란드에 납품됐다. 그런데 레오파르트 2A8 전차를 생산하는 KNDS가 도입 계약 국가에 통보한 납품 스케줄을 보면 너무 느리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가령 54대를 도입하는 노르웨이의 경우 2023년 2월 계약했지만 초도 물량 납품은 2026년 상반기, 최종 물량 납품 완료는 2031년 예정이다. 고작 54대 들여오는 데 8년이 걸리는 셈이다. 올해 1월 44대를 주문한 스웨덴은 초도 물량 납품이 2028년 상반기로 예정돼 있다. 최종 물량 납품 완료는 2031년이라고 한다. 계약부터 최종 물량 인수까지 6년이나 걸리는 셈이다.

이렇게 납품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독일의 전차 생산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KNDS의 레오파르트 2A8 생산능력은 매달 최대 4대, 연간 최대 48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7개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300여 대를 주문했으니 생산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자 KNDS는 2024년부터 월 20대 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높은 인건비와 복잡한 일감 분배, 부품 수급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K2 전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은 2023년 기준 연간 100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교대 근무를 조정해 생산 속도를 높이면 추가 인프라 확장 없이 연간 200대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현지 협력사인 PGZ그룹도 K2 전차 생산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폴란드 현지에선 2026년 생산을 시작해 2027년부터 매년 100대 이상을 찍어낼 예정이다. 이 같은 높은 성능의 전차를 이 정도 물량과 생산 속도로 납품 가능한 모델은 K2가 사실상 유일하다.

품질보다 '일자리 창출' 치중한 유럽 방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K-방산' 무기 중에는 우수한 성능과 빠른 납기, 합리적 가격이라는 경쟁력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할 만한 상품이 더 많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 각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압력이라는 연쇄 충격파를 얻어맞고 다급하게 대대적으로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30여 년간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유럽 방위산업은 각국 정부의 다급한 무기 주문을 소화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유럽은 냉전이 끝난 후 대규모 군축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신규 무기 발주가 거의 없어졌고 기존 장비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에 대거 매각됐다. 유럽 각국은 노후 무기를 대체할 때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자 공동개발·구매를 확대했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무기 개발 및 구매 과정에서 밥그릇 싸움이 벌어져 유럽 방산의 효율성이 끝 모르고 추락한 것이다. 독일은 물론,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정부는 무기체계를 구매할 때 성능보다 '일자리 창출'에 더 신경 썼다. 일감을 쪼개어 만든 수많은 하청·협력업체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다. 이 중 영세한 업체들이 도산해 무기체계 조립 공정이 멈춰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행정비용과 물류·인건비 폭등으로 무기 가격 상승도 피할 수 없었다.

유럽 방산이 냉전 때와 같은 수준으로 무기를 대량 생산하려면 이처럼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산업 생태계부터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가능할지 의문이다. 설령 산업 효율화를 추진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유럽 각국은 무기 증산을 선언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산 효율이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비싸고 납기가 느린 것은 앞서 소개한 레오파르트 2A8 전차만이 아니다. 독일군이 2023년 3월 고작 10문을 주문한 PzH-2000 자주포는 계약 2년이 지나도록 아직 1문도 인도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에 세자르 NG 자주포 36문을 발주한 포르투갈은 납기 완료까지 10년이 소요된다고 통보받았다. 해당 자주포는 트럭에 곡사포를 얹은 단순한 구조임에도 말이다.

한국 방산은 유럽과 비교 불가능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대규모 정규군을 육성해왔다. 이 과정에서 양질의 무기를 합리적 가격에 신속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산 인프라를 구축했다. 독일 공장에서 1년에 많아야 5문 정도의 PzH-2000을 만들 때 국내 공장에선 최대 320문의 K9 자주포가 생산된다. 독일 공장에서 매달 4대의 레오파르트 2A8 전차가 생산될 때 한국에선 8대의 전차가 만들어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매달 25대 넘는 국산 전차가 쏟아질 전망이다. 전차와 자주포뿐 아니라, 장갑차와 항공기, 군함 등 다른 방산 분야 상황도 마찬가지다.

3월 2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유럽 주요국과 캐나다 등 국가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재무장과 방위비 증액 방침을 밝혔다. [뉴시스]
‌지금 유럽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탈냉전 후 30년 동안 군사력 정비를 게을리해왔고 방산도 덩달아 쇠퇴일로를 걸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지난 3년 동안 무기고를 털어 우크라이나를 지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생긴 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현재 GDP 대비 1~2% 수준인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을 3% 이상으로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나아가 유럽 주둔 미군을 대폭 감축할 뜻까지 내비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은 GDP 대비 국방 지출을 큰 폭으로 상향해 대규모 무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 기준 GDP 대비 2.39%에 불과하던 폴란드의 국방비 지출은 올해 5%, 내년에는 6%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프랑스 역시 군비를 현 1.94%에서 내년 5%로 급속히 확충하는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독일(1.39→2%), 이탈리아(1.68→3%), 루마니아(1.73→2.26%), 스웨덴(1.6→2.4%), 리투아니아(2.52→6%), 에스토니아(2.09→5%), 라트비아(2.05→5%) 등 다른 국가도 급속한 군비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방산 역량으로는 이들 나라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무기를 적시에 조달하는 게 불가능하다.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등이 기존에 도입하려던 모델 대신 한국산 무기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K-방산 판로 개척에 정부 지원 절실

국내 주요 방산 기업은 이 같은 유럽 상황을 파악하고 현지에서 활발한 세일즈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유럽 여러 나라와 물밑 수출 협의가 진행 중인 품목은 전차, 장갑차, 자주포, 다연장로켓시스템 같은 지상 장비부터 전투기, 호위함, 잠수함,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기체계 거래에서는 성능과 가격, 납기만큼이나 정치·외교적 변수도 크게 작용한다. 한국이 그들과 같은 진영에 속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유럽 각국 지도자가 인지하도록 정부가 절실하게 노력해야 할 때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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