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계륵 대통령’, 질서 있는 조기 퇴진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심야 정치적 칼부림’의 여진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의 절박함에서였다.” 지극히 충동적·몰이성적이었다. “정치적 타살을 피하려고 자살을 택한다”는 실성한 듯한 논리였다. 난국 타개를 위한 결론부터가 더 시급하다. 그 원칙은 ‘윤 대통령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현직에서 퇴진해야 한다’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질서 있게 진행돼 국정 혼돈이 최소화돼야 한다. 헌법, 민심과 함께 최대 변수는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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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훼손, 미국도 불신 깊어
외교·인사, 군 통수 더 이상 불능
자진사퇴의 난국 타개 거부하면
탄핵 재의결, 내란죄 ‘체포’밖엔
」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5월 18일 0시1분의 비상계엄 확대 전날 오후 9시30분께 미국 측에 통보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숱한 계엄, 비상조치에 앞서 미국에의 통고를 무시하진 않았다. 북한 도발 등 존망의 사태를 저지할 보루는 한·미 동맹뿐이다. 비상계엄이란 자해극 전후로 어떤 통보나 친절한 설명을 듣지 못한 미국은 동맹 리더로서의 윤석열에 대한 기대를 빠르게 접는 분위기다. 미 국방장관 방한이 취소되고, 북핵 확장억제 협의(NCG)도 무기 연기시켰다. 미 조야의 배신감은 곳곳에서였다. “군사독재 회귀에 대한 한국민들의 뿌리깊은 두려움에 불을 붙였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에 진지하게 관여할 나라는 없다.”(CSIS,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그레그 브레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한국의 수많은 진전을 훼손한 끔찍한 실수”라며 “1987년 이후 한국 지도자의 최악”이라고 했다. “심각한 오판”(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에 이어,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2차 계엄령은 한국 대통령에게 미국이 맞서도록 강요할 것”이라고까지 화를 냈다. 미국의 신뢰는 통째로 사라졌다. ‘내란죄 피의자’로 수사에도 소환될 처지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리더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버리기도 그렇고 쓰임새조차 없는 계륵(鷄肋), 그게 앞으로의 윤 대통령 신세다.
최선의 해법은 윤 대통령 스스로의 조기 퇴진 결단이다. 궁지의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열흘 전 “임기 단축 등 진퇴를 국회에 일임하겠다”(11월 29일)고 했다. 사흘 뒤 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의결했다. 박 대통령은 그에 앞선 11월 8일 정세균 의장 등 국회 수뇌부를 찾아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주면 내각을 실질적 통할케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매번 악화일로 여론의 타이밍을 놓친 실기였다. 측근 변호사 일부는 “재판을 이길 수도 있다”며 마지막까지 권력에의 집착, 미련을 놓지 못하게 했다. 4년9개월 수감을 맞게 한 이유였다. 당시의 최측근 인사는 “정치의 성공, 실패 모두에 기회라는 신의 소매가 보이지만 박 대통령은 주저주저하다 잡지 못했다”고 했다. 조기 퇴진이라면 총리 등 법적 권한 승계자가 국정 관리를 하며, 여야가 차기 대선 등의 안정화를 논의하면 될 터다. 대통령 퇴진 이후 차기 대선의 관리 주체에 시비가 생긴다면 여야 합의의 거국 중립내각도 가능하겠다. 1992년 대선 직전 노태우 대통령이 탈당하며 학자 현승종 총리에다 선거 부처를 중립 인사로 앉힌 두 달 내각처럼 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지금처럼 용산에서 2000여 명 고위 인사, 군 통수 결재의 펜을 쥔 한 어떤 해법도 쉽지 않을 터다. 조기 자진사퇴 외의 타개가 이뤄지려면 ▶헌법의 근거는 절대 필수다. ▶국회의 합의 ▶민심 ▶실현 가능성 등도 관건이다.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만 권한대행이 가능하다는 게 헌법이다. 헌법에도 없는 ‘2선 후퇴’ 같은 애매함은 애초 불가능이다. 가장 명확한 헌법적 조치는 탄핵소추뿐이다. 하지만 재의결이 결국 무산될 경우의 길은 한 가지. ‘국헌 문란을 위한 폭동’ 등의 내란죄 혐의로 윤 대통령이 수사받다 체포될 경우다. ‘사고’로 규정돼 직무를 정지하고 승계자가 대행하는 방도다. 역시 총리가 일상을 챙기며 여야가 차기 대선 등 안정화를 모색할 수 있겠다.
가장 의혹이 갔던 윤 대통령의 워딩은 “제 임기 등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한다”였다. 대통령직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우리 당이라니. 정당은 국민의 자발적 모임인 ‘사적 결사체’(정당법)일 뿐이다. 정당이, 그리고 한동훈 당 대표가 ‘직무정지’ 같은 그런 결정을 내릴(건의야 가능해도) 법적 권한은 없다. 모든 게 헌법과 헌법 기관인 국회의 권한일 뿐이다. 여전히 ‘친윤’이 우글대는 세력을 믿은 ‘버티기’ 꼼수라는 건 당연한 의심이다. ‘한동훈-한덕수’ 중심 체제의 난국 타개책이 ‘민생 관리’ 수준 외엔 근본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윤 대통령 한 사람의 임기를 줄이는 ‘원 포인트 개헌’ 역시 난망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내각제로 바꾸자는 충정엔 동의하나 윤 대통령의 ‘시간끌기 음모’로 야당이 일축할 뿐이다.
이 국난 극복의 대원칙은 차기 대권 같은 정파의 계산이 아니라 오직 ‘풍전등화’인 나라와 후대들의 미래다. 거대야당은 과연 국민에게 아무런 잘못 없는 100% 구경꾼인가. 풍찬노숙 야당 삶이 두려워 투표 양심을 거부한 여당은 지역 젊은이로부터 무슨 얘기를 듣고 있나. 지금 윤 대통령과 여야 모두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에 올라서 있다.
최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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