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처럼 움직인 홍명보호... 상대 수비진 키까지 계산했다
14일 한국(FIFA 랭킹 22위)과 쿠웨이트(135위)의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5차전이 열린 자베르 알아흐마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한국이 오세훈(25·마치다)과 손흥민(32·토트넘)의 연속 골로 전반을 압도하며 2-0으로 앞서자 6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엔 붉은 악마 응원단 200여 명의 ‘대~한민국!’만 메아리쳤다. 한 쿠웨이트축구협회 관계자는 하프타임 때 한국 취재진에게 “이너프(충분하잖아)”라며 더는 득점을 하지 말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후반 15분 쿠웨이트가 한 골을 만회하면서 다시 끓어 올랐던 경기장 분위기는 후반 29분 배준호(21·스토크시티)의 쐐기골에 다시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경기장을 나서자 쿠웨이트 어린이 팬들이 질투 어린 표정으로 “코리아, 넘버원!”을 외쳤다.
홍명보(55)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쿠웨이트를 3대1로 물리치고 쾌조의 4연승을 달렸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승점 13(4승1무)을 쌓아 이날 0대0으로 비긴 요르단, 이라크(이상 승점 8)와 승점 차를 5로 벌렸다. 골득실 차로 요르단(+4)이 2위, 이라크(+1)이 3위다. 3차 예선 일정이 반환점을 돈 가운데 한국은 B조에서 독주 체제를 갖추며 조 1~2위에 주어지는 본선행에 바짝 다가섰다. 홍명보호가 이번 3차 예선에서 올린 승점 13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본선행이 걸린 역대 예선 첫 5경기에서 기록한 최다 승점. 대표팀은 19일 요르단 암만에서 팔레스타인과 3차 예선 6차전을 벌인다. 팔레스타인은 이날 오만에 0대1로 패하며 조 최하위(승점 2)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파가 주말 경기를 끝내고 합류하면서 실제 ‘완전체’로 전술 훈련을 소화한 것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홍명보호는 이날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유기적인 플레이로 상대를 교란했다. 전반 10분 황인범(28·페예노르트)이 한 박자 빠르게 올린 크로스를 193cm 장신 스트라이커 오세훈이 머리로 받아 넣어 선제골을 뽑아냈다. 지난달 이라크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뽑아낸 오세훈의 2경기 연속 득점. 상대 포백 수비진 중 오른쪽 두 명이 키가 작아 미리 준비한 작전이었다.
전반 17분엔 부상에서 회복해 두 달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캡틴 손흥민이 빛났다. 그는 이재성(32·마인츠)이 찔러준 패스를 받아 골문 앞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상대 수비에 걸려 넘어지며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2분 뒤 직접 키커로 나서 골문 왼쪽 하단 구석에 정확히 공을 꽂으며 A매치 130번째 경기에서 50호골을 기록했다. 황선홍 대전 감독과 공동 2위. 1위는 58골의 차범근 전 감독이다.
이후 몇 차례 추가골 찬스를 놓친 한국은 후반 15분 일격을 당했다. 요세프 알샤마리가 왼쪽에서 올린 대각선 크로스를 모하마드 압둘라가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해 골네트를 흔들었다. 2-1로 쫓기던 후반 29분, 신예 배준호의 발끝이 번뜩였다. 황인범이 절묘한 스루패스를 내줬고, 손흥민 대신 교체로 들어온 배준호가 이를 받아 간결한 볼 컨트롤로 상대 수비를 한 명 제친 뒤 오른발 슈팅으로 쐐기골을 꽂았다. 배준호는 최근 A매치 5경기에서 2골 2도움을 올리며 홍명보호의 확실한 공격 옵션임을 증명했다. 이날 2도움을 올리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된 황인범은 “지난 세 달 동안 최대한 같은 스타일로 경기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짧은 훈련 시간에도 모두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며 “우리가 공을 많이 소유하며 상대를 힘들게 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 건 소통을 많이 하면서 준비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임 절차 논란으로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던 홍명보 감독은 지난 7월 부임 이후 빠른 시간 안에 팀을 안정화시켰다. 홍 감독은 이날 쿠웨이트전에서 돌아온 손흥민을 후반 19분에 빼주면서 출전 시간을 관리하고, 이태석(22·포항)과 이현주(21·하노버)에겐 A매치 데뷔 기회를 주는 등 깔끔한 경기 운영을 선보였다. 홍명보호는 3차 예선 1~5차전에서 7명이 11골을 넣는 등 득점 루트도 다양하다. 홍 감독은 4연승을 지휘한 원동력에 대해 “대표팀 감독직을 맡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터 오직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단순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항상 머리에 가지고 있고, 다른 생각하지 않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울루 벤투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UAE(아랍에미리트)는 키르기스스탄을 3대0으로 물리치며 4경기 만에 승리, 승점 7로 A조 3위에 자리했다. 같은 조 북한은 이란에 2대3으로 패하며 최하위(승점 2). C조에선 중국이 바레인을 1대0으로 꺾고 2연승을 달리면서 승점 6을 기록했다. 0대0으로 비긴 호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승점이 같지만 골득실에 밀린 4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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