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윤·한 면담 때 직사각형 직접 골랐다···테이블의 정치학 [여의도앨리스]
남북회담 땐 직사각형, 타원으로 바꾸기도
한 측 비서실장 자리 비운 틈에 면담 시작
친한 “용산 참모만 배치, 오해할 상황”
지난 21일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에서는 한 대표 측이 원형 테이블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이 거절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회담에서 테이블 모양은 왜 중요한 것일까.
2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표 측은 면담 전 실무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사각 테이블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고 원형 테이블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 대표 측은 윤 대통령이 ‘상석’ 자리인 사각 테이블 한가운데 앉고 한 대표와 정 실장이 양쪽에서 마주보는 방식의 좌석 배치를 예상했다고 한다. 이것보다는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이 옆으로 나란히 앉아 대등해 보이는 원형 테이블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형 테이블은 상석이 따로 없어 평등과 소통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는 윤 대통령이 자리 배치를 구체적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한 대표 측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마주앉고 한 대표 옆에 정 실장을 앉도록 한 좌석 배치 등을 직접 세팅했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와 대통령이 만나는 영수회담 등은 주로 원형 테이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난 4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회동할 때에는 원형 테이블이 배치됐다. 이런 길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은 배석자가 많은 정상회담 시 이용된다.
윤 대통령이 직사각형 테이블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3명뿐인데도 정사각형이 아닌 가로변이 매우 긴 직사각형 형태를 고른 것도 인상적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한 여권 핵심 인사는 통화에서 “역대 회담을 보면 권위적인 정부일수록 테이블 크기가 커져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2022년 9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을 때 무려 5m에 달하는 테이블에 사용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두 정상은 양쪽 끝에 앉아 5시간 동안 양자회담을 진행했는데, 이 구도를 놓고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양국 간 심리적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보여주는 구도이기도 하다.
친밀한 분위기를 소거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정부 때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직사각형 테이블을 타원형 테이블로 일부러 바꾸는 일도 있다. 당시 청와대는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둘러앉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료는 기자에게 “원형테이블이 직각보다는 친밀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기 좋다”고 설명했다.
회담에서 좌석 배치도 중요하다. 외교가에서는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사람이 원톱으로 혼자 앉고 테이블 건너편은 투톱을 배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번 윤·한 면담에서도 윤 대통령은 혼자 앉았고, 한 대표는 정 실장과 함께 앉았다. 이를 두고 친한동훈(친한)계에서는 “변호인을 대동한 피의자로 보인다”는 등의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실이 한 대표를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상대측보다 배석자를 더 배치하려는 신경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복수의 친한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윤·한 면담에서 한 대표 측은 박정하 비서실장 배석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다만 박 실장은 파인그라스 밖에서 한 대표, 홍철호 정무수석과 함께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면담이 늦어지는 과정에서 홍 수석의 제안으로 박 실장이 정무수석 사무실에서 티타임을 하려고 올라가 있는 사이 면담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한 대표가 면담을 기다리는 20여분과 윤 대통령과 산책했을 때 박 실장은 배석하지 못했다. 한 친한계 인사는 통화에서 “의도적으로 용산 참모들만 배치하려고 그런 것 아닌지 오해할 만한 상황 아니냐”고 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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