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는 '반도체 천재' 회사였다…ARM·퀄컴의 전쟁, 삼성은?
반도체 설계회사 ARM이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회사인 퀄컴에 반도체 설계자산(IP) 사용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지난 22일 ARM은 퀄컴에 라이선스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뜻을 통보했다. 해지 효력은 60일 뒤부터 발생한다. 이 뉴스에 주말까지 반도체 업계는 물론 주식시장까지 출렁였다.
전 세계 모든 스마트폰 두뇌 칩의 기본 설계 밑그림을 제공하며 ‘반도체 업계의 스위스’로 불리던 ARM이 특정 고객사에 자신들의 IP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퀄컴은 물론 삼성전자·애플·미디어텍 등 모든 회사가 ARM의 IP를 사용해 스마트폰의 두뇌 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ARM의 계약해지 통보는 퀄컴이 역대 최고 성능의 야심작 칩인 ‘스냅드래곤8 엘리트’ 공개 행사를 열며 축제 분위기에 빠져있는 동안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야말로 잔칫집에 대놓고 찬물을 끼얹은 셈. 두 반도체 설계 거인은 도대체 왜 이렇게 싸우는 것일까. 가만히 있던 삼성전자는 왜 이 싸움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일까.
ARM이 먹고 사는 법, ALA와 TLA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ARM의 밑그림 제공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TLA(기술 라이선스 계약)과 ALA(아키텍처 라이선스 계약)이다. TLA는 이미 어느 정도 조립된 ARM의 설계 덩어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다. 반면 ALA는 개별 설계 사용권만 가져가 고객사가 입맛에 맞게 조립하겠다는 계약이다.
레고 블록에 비유하면 TLA가 어느 정도 조립된 레고 블록 반조립 덩어리를 가져와 완제품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ALA는 레고 기본 블록을 낱개로 가져와 처음부터 조립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ARM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을 가져다 쓰는 TLA 방식에 더 비싼 사용료를 물린다. 퀄컴·삼성전자·대만 미디어텍은 TLA 방식으로 ARM의 IP를 쓰는 반면, 애플은 ALA 방식으로 낱개 블록을 가져가 알아서 조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마트폰 두뇌 칩을 만드는 이들 회사의 실력도 대체로 여기서 판가름이 난다.
누비아
애플의 성공 뒤에는 자체 칩인 애플실리콘 설계를 초기에 주도했던, 이른바 ‘설계 천재들’이 있어 가능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최강의 칩으로 평가받는 애플 아이폰·아이패드용 ‘A 시리즈’ 칩의 초석을 놓는다. 애플은 이렇게 자체 칩을 손에 넣고 삼성전자·인텔로부터 칩 독립에 성공하며 모바일 시대를 지배했다.
그런데 이 스타 설계자·개발자들이 독립해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겠다고 선언한다. 당초 이들이 노린 것은 인텔과 AMD의 x86 진영이 독점하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누비아는 야심차게 ARM과 ALA 계약을 맺고 새로운 서버용 반도체 설계를 시작한다. 여기서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한다. 2021년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퀄컴이 갑자기 나타나 1조5000억원에 누비아를 인수해버린 것.
퀄컴의 논리, ARM의 논리
퀄컴 측의 논리는 이와 같다. 애초에 누비아가 ARM과 계약을 맺었던 상황에서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했으니, 이를 활용해 칩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ARM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하며 2022년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계산을 다시 하자”는 뜻이다. ARM은 이번 일을 어물쩍 넘어간다면 앞으로 퀄컴 외에도 여러 고객사들이 우회로를 통해 로열티 계약 체계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퀄컴이 ARM의 최대 고객임에도 초강수를 둔 배경이다. 반도체 업계 중립국으로 불리던 ARM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인수 이후 독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뒤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
이 경우 자체 설계 칩 엑시노스 2500의 수율(양품 비율)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아 내년 출시될 갤럭시 S25에 퀄컴 칩을 넣으려던 삼성전자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반면 안드로이드 진영 최고 성능 칩으로 군림하던 퀄컴이 칩을 팔지 못한다면 설계 분야 경쟁자인 애플이나 대만 미디어텍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칩 설계 분야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설계·개발 역량을 미리 키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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