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삼겹살도 직접 구워준다…설 곳 잃은 PC방의 비명

나상현 2024. 9.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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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PC방. 나상현 기자

명절날 아이들끼리 손에 1000원 몇장 들고 찾아가던, 혹은 어른들 잔소리를 피해 한숨 돌릴 안식처가 되어주던 전자 놀이터. 과거 청소년들의 문화 성지로 군림했던 PC방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 발달로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수요가 줄어들고, 높아진 인건비와 전기요금에 운영이 힘들어진 현실까지 겹친 탓이다.

박경민 기자


15일 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전국 PC방 사업자 수는 매년 6월 기준 2017년 1만648개에서 올해 7484개로 29.7% 급감했다. 매년 감소세에 놓인 데다, 특히 지난해(8011개)엔 전년 대비 12.3% 감소하는 등 코로나를 거치며 증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2017년 749개에서 올해 386개로 48.5% 쪼그라들면서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뒤이어 전북(-40.8%), 대구(-40.6%), 서울(-38.9%), 울산(-36.2%), 경남(-29.2%), 제주(-29.2%), 경북(-27.4%) 순으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가 많은 세종은 5.6% 줄어드는 데 그쳤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모바일 게임 시장이 확대되면서 PC게임에 대한 수요 자체가 옅어진 측면이 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발간한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모바일게임의 매출액 비중은 64.4%로 가장 컸고, PC게임 비중은 28.6%를 차지했다. 10년 전인 2012년의 경우 PC게임이 86.8%로 절대적이고, 모바일게임은 10.1%에 불과했다. 10년 새 모바일게임과 PC게임의 입지가 뒤바뀐 것이다.

2022년 게임 플랫폼별 매출액 비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는 스마트폰의 발전과 연관성이 크다. 고스펙 게임이 구동될 만큼 성능 좋은 기기가 등장하면서 게임사들도 상대적으로 투입하는 자본이 적은 모바일 게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등 기존 PC게임을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하거나, PC와 모바일에서 모두 플레이할 수 있는 멀티 플랫폼으로 출시하는 식이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PC 버전 배틀그라운드가 아닌 모바일 버전 배틀그라운드를 e스포츠 종목으로 채택했던 점도 이같은 변화를 상싱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PC보다 스마트폰을 더 일찍 접하고, 더 친숙한 청소년 세대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PC방을 가야 하는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설문대상 청소년의 98%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울 광진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모(50)씨는 “PC방 주고객층인 청소년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모바일 게임이 워낙 많이 늘어났고, 이용자를 끌어올 만한 PC용 대작 온라인 게임이 나오지 않는 것도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PC방 풍경. 중앙일보DB

설상가상으로 매년 오르는 고정비도 운영상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PC방은 대부분 24시간 운영이 기본인 만큼 막대한 전기요금이 고정적으로 나오고, 최저임금도 매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이 사상 처음으로 1만원을 돌파하면서 PC방 업주들의 시름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콘진원이 전국 PC방 100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영상 체감 악화 원인으로 ‘고정비용 상승’이 59.5%(1+2순위 기준)로 가장 많았다. 가장 필요한 정부 지원으로도 ‘인건비와 월세가 너무 비싸기에 고정비에 대한 지원 정책’을 꼽았다.

이에 인건비라도 아끼기 위해 무인 PC방을 운영하거나, ‘PC토랑’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 판매에 집중하는 생존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PC방은 정육점처럼 삼겹살을 직접 구워주는 것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김기홍 한국인터넷PC카페협동조합 이사장은 “PC방은 24시간 운영되다 보니 전기요금과 주휴수당 포함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더욱 취약해지는 업종이다. 최근 야간 운영을 아예 포기하는 업주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소상공인용 전기요금 체계를 바꿔주고, 소상공인과 노동자 모두 상생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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