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 “독이 약 된다” 달팽이가 먹이 잡는 독, 당뇨병 치료에 효과
사람 세포에서도 혈당 저하 확인
기존 치료제보다 부작용 우려도 적어
바다에 사는 달팽이 중 하나인 대보초 청자고둥(geography cone)은 독특한 사냥법으로 유명하다. 독으로 사냥감의 혈당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마비시킨다. 바다달팽이의 독이 인간에게 약이 될 수 있다. 독이 혈당을 줄이기 위해 분비하는 인슐린과 유사한 성분이기 때문이다.
헬레나 사파비 미국 유타대 교수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대보초 청자고둥의 독성 성분인 ‘콘소마틴(Somatostatin)’을 이용해 당뇨병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물질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안정적인 구조를 가져 장기간 혈당 저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보초 청자고둥은 달팽이와 같이 복족류에 속하는 바다 동물이다. 한국과 중국 일대 바다를 비롯해 전 세계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크기는 최대 15㎝에 달할 정도로 크고 껍질에는 화려한 무늬를 가져 수집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보초 청자고둥은 치명적인 독을 사용하는 사냥꾼이다. 숨어 있다가 더듬이를 사냥감의 먹이처럼 흔들며 유인한다. 먹잇감이 가까이 다가오면 강력한 독침으로 마비시킨 후 통째로 잡아 먹는다. 이 독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대보초 청자고둥이 사냥할 때 쓰는 독을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대보초 청자고둥의 독 성분은 사냥감의 혈당을 낮춰 마비시킨다. 뇌와 근육의 주 에너지원인 포도당 수치가 갑자기 떨어져 꼼짝 못한다. 대보초 청자고둥은 이 같은 효과를 내는 독을 여러 종류 혼합해 사용한다. 연구진은 이 중 콘소마틴이라고 불리는 성분에 주목했다.
콘소마틴은 사람에서 인슐린과 글루카곤 호르몬 분비량을 조절하는 물질인 소마토스타틴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기능을 하고, 글루카곤은 혈당을 높인다. 소마토스타틴은 혈당 수치가 높은 당뇨병 환자의 조직 괴사 증상을 억제하는 약물로 사용한다. 소마토스타틴은 저용량으로 주사하면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모두 줄여 혈당에 별 영향이 없지만, 고용량으로 주사하면 글루카곤 분비만 크게 억제돼 혈당이 줄어든다.
연구진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세포를 배양해 적당량으로 희석한 콘소마틴과 소마토스타틴을 주입한 후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소마토스타틴은 글루카곤 분비량을 억제하는 동시에 다른 생체 단백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콘소마틴은 인슐린 분비만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혹시 모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당뇨병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사파비 교수는 “콘소마틴은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호르몬만 조절해 효과는 높으면서도 부작용은 낮출 수 있다”며 “콘소마틴을 직접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콘소마틴을 기반으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콘소마틴을 구성하는 아미노산도 당뇨병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콘소마틴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사람이 분해하기 어려운 류신, 이소류신, 메티오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콘소마틴을 한 번 주사하더라도 인슐린보다 더 오랜 시간 혈당 감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콘소마틴을 인슐린과 함께 쓰는 것도 가능하다. 대보초 청자고둥은 인슐린과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독 성분으로 사냥감의 혈당을 빠르게 낮춘 후 콘소마틴으로 해당 독 분비를 계속 촉진해 혈당 저하 효과를 유지한다. 당뇨병 환자에게도 인슐린과 콘소마틴을 동시에 활용하면 인슐린의 혈당 저하 효과를 장기간 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파비 교수는 “콘소마틴은 성장 호르몬의 분비량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며 “성장호르몬이 과다분비돼 발생하는 질병의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50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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