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놈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도경동에겐 ‘28초’면 충분했다[파리올림픽]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는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5라운드까지 헝가리에 25-22로 앞섰다. 그러나 6라운드에 출전한 ‘에이스’ 오상욱이 서트마리에게 고전하며 30-29로 바짝 추격을 허용했다. 원우영 대표팀 코치는 7라운드에 구본길 대신 ‘조커’ 도경동(25·국군체육부대)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도경동은 ‘단체전 3연패’가 걸린 중요한 경기의 승부처에서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다.
도경동은 이런 상황을 즐기듯 헝가리의 러브를 상대로 3초 만에 득점했다. 그다음 득점은 4초, 또 그다음 득점은 5초 만에 나왔다. 도경동이 7라운드를 5-0으로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8초였다. 도경동의 활약으로 35-29, 6점 차 리드를 잡은 한국은 최종 45-41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때 도경동이 격차를 벌려놓지 못했다면 한국은 지금과 사뭇 다른 결과를 받아들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에 귀중한 득점이었다. 파리 올림픽 ‘2관왕’ 오상욱은 도경동의 활약에 대해 “제가 평가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잘했다”고 극찬했다.
도경동은 남자 사브르 단체전 네 번째 선수로 이번 올림픽에 참가했다. 쉽게 말해 ‘후보 선수’다. 앞서 캐나다(8강전), 프랑스(4강전)와 경기에도 출장하지 않았다. 프랑스와 준결승전 승리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도경동은 “몸이 근질근질하다”며 웃었다. 신예급인 그에겐 알 수 없는 여유가 느껴졌다. 도경동은 맏형 구본길이 8강 캐나다전에서 고전하자 “형이 자신 없으면 내가 할 테니까 지더라도 자신 있게 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구본길은 파리 포함 올림픽 금메달 3개를 보유한 한국 펜싱 레전드다.
구본길도 한참 어린 동생의 이 같은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도경동을 동료로서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도경동은 구본길 대신 경기에 투입돼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는 등 내뱉은 말을 지켰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믹스트존에 입장한 그는 “질 자신 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에 들어가기 전 형들에게 이기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며 “(김)정환, (김)준호 형(전 국가대표)이 경기에 나가면 네가 어떤 놈인지 보여주라고 했는데, 제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4년 뒤 목표를 묻는 물음엔 “한국 남자 사브르는 최강이라고 생각한다”며 “세계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응원해달라”고 했다. 한편 10월16일 전역을 앞두고 있던 도경동은 올림픽 메달을 따며 조기 전역이 가능해졌다. 제 손으로 전역 일정을 앞당긴 그는 “사회에 나가 펜싱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밝게 웃었다.
파리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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