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시부사와 논란, 분노로만 끝난다면
“고조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가 평소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를 한국에도 알릴 수 있다면 응하겠습니다.”
최근 일본의 1만엔권 새 지폐에 얼굴이 실린 메이지·다이쇼 시대 경제 관료이자 기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의 고손자 겐(63)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보내온 답변이다. 며칠 뒤 만난 그는 “정치는 분노를 연료로 삼기에 늘 양국 관계를 물고 늘어지지만 한국과 일본은 친구”라며 “고조부에게는 국적을 떠나 후세대 사람이라면 배울 만한 면모가 꽤 있다”고 했다.
시부사와의 고손자가 이처럼 조심스러워 한 이유는 한국에서 시부사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시부사와가 1만엔권 인물이 된다고 발표된 2019년 국내 언론들은 그를 ‘구한말 경제 수탈 주역’이라고 비판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에서 일본발(發) 지폐 발행과 철도 부설을 이끈 장본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이런 논란과 함께 기업인, 그리고 사회의 리더로서 그의 발자취를 훑어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시부사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일본에서 500개에 달하는 기업을 세웠다. 자본주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렇게 번 돈으론 그가 세운 기업보다 더 많은 사회 공헌 단체를 만들었다. 은행·보육원 등 그가 세운 기관들이 아직도 일본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시부사와는 재계 핵심 인물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떠날 땐 ‘공수래 공수거’를 실천했다. 그가 자손에게 남긴 유산은 1000만엔(현재 환율로 약 90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미쓰이 등 다른 재벌들은 5억~10억엔씩을 자식들에게 물려줬다. 시부사와는 500개 기업을 세우면서도 본인 이름을 딴 회사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동력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열의였다는 게 후손들의 설명이다.
시부사와는 또한 경제계 지도자로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안정을 바라고 변화를 꺼리는 일본인의 특성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봤다. 현재의 실패나 성공에 묶여 있지 말고 계속 새 사업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이란 장기 경제 침체에 빠진 일본이 100년 전 인물인 그를 최고액권에 소환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시부사와가 경술국치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가 한반도 침탈에 일조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그의 행적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시부사와에 대해 분노만 끓어오르고 끝난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없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자신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겐 분노를 넘어, 교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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