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여성 美대통령’ 도전… 해리스의 시간 다가오나
인도계 모친 영향… 검사 시절부터 야심 대단
사상 첫 여성·유색인종 부통령
대통령 당선시 ‘퍼스트 젠틀맨’도 탄생하게 돼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선거를 불과 4개월 여 앞두고 대선 구도가 급변하게 됐다. 바이든은 “이번 대선에서 우리 당의 후보로 해리스에 대한 완전한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60)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게 된다. 8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못 다 이룬 꿈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하는 전당대회는 다음달 19~22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열린다. 해리스는 이날 “대통령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 영광”이라며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 인도 브라만 출신 모친… 카멀라는 ‘연꽃’이란 뜻
해리스는 중남미 카리브해 섬나라 자메이카 출신인 부친, 인도 브라만(인도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 최고 계급) 가문 출신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멀라’란 이름은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란 뜻이다. 부친은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모친은 과학자였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유학 중 흑인 민권운동을 하며 가까워져 결혼했다. 1964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두 딸 중 맏이로 태어난 해리스는 과거 인터뷰에서 “유모차 높이에서 민권운동을 보며 자랐다”며 “인생 최초의 기억들은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다리, 구호를 외치는 소리”라고 했다.
해리스는 7살 때 부모가 이혼해 세 살 아래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 손에 컸다. 자서전에서 “어머니는 미국이 여동생과 나를 ‘흑인 소녀’로 본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자신감 있는 흑인 여성으로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어렸을 때부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자란 것이다. 해리스는 박사 학위를 받고 유방암을 연구하던 모친 직장을 따라 캐나다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워싱턴DC의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에 진학해 정치학·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생 때 상원의원실 인턴, 아프리카계 여대생 단체인 ‘알파 카파 알파’ 등에서 활동하며 이력을 쌓았다.
◇ 검사 시절부터 야심가, 서른 살 위 정치인과 염문설도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립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90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을 지휘해 범죄자를 기소하는 자신을 ‘톱 캅(Top Cop)’이라 자랑스레 소개했는데, 이 때부터 야심이 대단했다. 1994년 캘리포니아주 주의회 의장으로 지역 정가를 꽉잡고 있던 흑인 정치인 윌리 브라운의 연인이 됐다. 해리스보다 서른 살 위인 아버지뻘이고 당시 아내와 별거 중인 바람둥이였지만, 브라운과의 교제를 통해 주 고위직을 지내고 정계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브라운이 최초의 흑인 샌프란시스코 시장에 당선된 직후인 1995년 헤어졌지만, 둘의 관계가 계속 회자되며 해리스의 정치 역정에서 공격 대상이 됐다.
해리스는 39세 때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에 출마해 당선됐고, 46세에 법무장관이 됐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흑인 여성 법무장관으로 열정적인 연설 스타일로 ‘여자 오바마’란 별명이 붙었다. 2016년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직에 도전했는데 같은 당 소속 현역 하원의원을 누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흑인 여성으로는 캐럴 브라운에 이어 두 번째 상원 입성이었는데, 법사위·정보위에 소속돼 활발한 의정활동을 벌였다. 2020년 대선 경선에선 ‘바이든 저격수’로 이름을 알렸고, 바이든은 8월 전당대회에서 해리스를 자신의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다. 이듬해 1월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첫 여성·유색 인종 부통령이 됐다.
날카로운 언변과 소수 인종·여성으로 미국의 비주류 사회에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부통령 재임 중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해리스는 2014년 동갑내기 백인 변호사인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고 이전 결혼에서 얻은 딸이 둘 있다. 엠호프는 미국 역사상 첫 ‘세컨드 젠틀맨(Second Gentleman)’이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한 적이 있다. 해리스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사상 첫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그해 9월 부통령으로는 4년 만에 방한한 해리스를 접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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