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계획된 혐오’ 잊지 말아야 할 팬데믹의 묵시록

김진형 2024. 6. 14. 00: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당신 같은 불평꾼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에겐 인류를 죽음에서 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소수를 희생해서 대다수를 구하는,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야."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가까운 미래.

통제와 자유의 대립, 그리고 팬데믹 시절 혐오와 차별이 만연했던 우리 사회의 기억을 또렷하게 되살린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주 활동 김희선 장편소설
전염병 창궐 가까운 미래 배경
우주 격리된 슈퍼 전파자 ‘247’
가축 살처분 섬뜩한 메시지
바이러스 대처 방식에 의문도
▲ ‘247의 모든 것’ 홍보 이미지 일부. 작중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이자 인류 최후의 숙주였던 ‘247’은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홀로 우주선에 탑승한다.

“당신 같은 불평꾼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에겐 인류를 죽음에서 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소수를 희생해서 대다수를 구하는,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야.”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가까운 미래. 인류는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위기를 겪는다. 전염병에 대한 세계적 공조의 일환으로 세계질병통제센터(WCDC)가 세워지고, 바이러스 전염을 통제하기 위해 해열제는 금지 약물이 됐다.

확진자 ‘247’은 바이러스의 슈퍼 전파자다. 인류의 적이었던 그는 인공위성에 갇힌 채 우주로 격리조치 된 후 눈을 감는다. 247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세상에서 가장 불결한 인간으로 멸시받거나, 위대한 선택을 한 예수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247의 이름이 김홍섭이었다는 사실과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원주에서 약사로 활동하는 김희선 작가의 음모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편소설 ‘247의 모든 것’은 팬데믹을 잊어가는 사회에 던지는 묵시록으로 읽힌다.

247은 과연 온당하게 다루어진 것일까. 통제와 자유의 대립, 그리고 팬데믹 시절 혐오와 차별이 만연했던 우리 사회의 기억을 또렷하게 되살린다.

“약도, 백신도 없던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텅 빈 무덤 같은 건물에 갇혀 꼼짝없이 죽어간 이들.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팬데믹이 지나고 소설을 퇴고하던 중 코로나19로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는 작가는 “때론 그 모든 일들이 현실이었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고 고백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에 북적이는 사람들 속 희미하게 지워진 이들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코로나19에 대처했던 공중보건과 행정의 방식이 과연 적합했는지 묻는 지독한 풍자극이다.

작중 등장하는 ‘기록자’는 247과 관련된 인물들의 내용을 모으며 각각의 무수한 이야기를 펼친다. 혹자는 어린시절 산골에 살았던 247이 학교에 들어온 박쥐에게 감염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그가 근무했던 축산연구원에서 만난 돼지들에게 감염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247에 대한 기록은 저마다의 주관대로 편집된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원주로 추정되는 강원도의 W시다. 이곳에 WCDC라는 국제 질병관리센터의 2청사가 세워지고, WCDC로부터 바이러스 보균자가 해열제를 먹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도시는 곳곳에 띄워진 열 감지 드론 으로부터 감시받는다. 발열은 죄가 됐고, 파라세타몰이라는 평범한 해열제는 불온한 약이 됐다. 필요하다면 도시나 국가를 봉쇄하고 확진자를 영원히 격리하는 긴급조치도 단행된다. 대감염 시대에 따른 선제적 조치였다.

전작들에 이어 김희선 작가가 조명하는 것은 군중들의 ‘집단 광기’다. 팬데믹에 대한 두려움은 혐오의 감정을 극단으로 증폭하고 진실을 약화시킨다. 일부 사람들은 해열제 금지에 저항했지만, 바이러스로 추정되는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전염병 보균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고, 어느새 WCDC는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이는 초국적기구가 된다.

니파바이러스의 숙주인 돼지 종의 말살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작가는 구제역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대안으로 선택해 온 살처분과 바이러스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축사 속 팬데믹을 연출한다. 산 채로 묻힌 돼지들로 인해 247은 트라우마를 겪고, 땅에서 돼지떼의 피가 흘러나온다.

무수히 계속될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미래를 그린 기묘한 현실의 그림자는 인간의 기억이 그리 오래가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멈춰 서서 돌아봐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병상에 갇혀 가족도 보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김진형 #묵시록 #바이러스 #해열제 #사람들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