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일, 몽골서 비밀접촉…"김정은 직보라인 보냈다"

정영교, 박현주 2024. 6.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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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와 인공기의 모습. [중앙포토]

북한과 일본이 최근 몽골에서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공개적으로는 일본 측과 "모든 접촉을 거부한다"고 공언했으면서도 비밀리에 만난 건 경제적·외교적인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12일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과 일본 인사들은 지난달 몽골에서 만났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양국이 지난달 중순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에서 만난 것으로 안다"며 "북한에선 정찰총국·외화벌이 관계자 등 3명이 참석했으며, 일본 측은 유력한 가문 출신의 정치인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소식통은 "양측은 지난주 후반에 내몽골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돼 있었다"고 했다. 다만 양국 간 접촉이 계획대로 지난주 이뤄졌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와 관련, 지난 6~7일 각국이 모여 동북아 안보를 논의하는 '울란바토르 대화'가 열려 이를 계기로 북·일이 만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북한이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이번 북·일 접촉이 주목되는 건 북한이 불과 3개월 전 공개적으로 일본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3월 25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가능한 빠른 시기에" 정상회담을 제안해왔다고 소개하며 흥미를 보이는 듯 하더니, 이튿날 곧바로 "일본은 역사를 바꿀 용기가 없다. 일본과의 어떤 접촉·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흘 뒤에는 최선희 외무상이 또 "조·일(북·일) 대화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시 북한이 사실상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비핵화 문제와 납치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요구했는데, 일본이 납치자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자 입장을 급선회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회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런데도 최근 제3국에서 일본 측과 만난 건 북한이 안팎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북·일 정상회담에 절박한 것 같았던 일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자 일단 물러섰지만,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내밀고 있는 손을 다시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기시다 총리도 지난 4월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당국 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 양국 간 논의가 급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 전 총리의 방북(2002·2004년)이나 일본인 납치 피해자 조사-대북제재 해제에 합의한 '스톡홀름 합의'(2014년 5월)도 중재자 없이 '직거래'로 성사시켰다.

이번 몽골 접촉에 참여한 양국 대표단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북한에서는 외무성이 아닌 최고사령관(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 지휘를 받는 첩보기관인 정찰총국 관계자가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은이 직접 챙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정찰총국 관계자를 내보낸 것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의제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정찰총국은 대남·해외공작을 담당해온 부서로,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외화벌이 일꾼'이 나온 것도 통상적이지는 않다. 이는 북한이 원하는 경제적인 반대 급부와 관련한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이 신분을 사업가로 세탁하기 위해 내세운 직함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지난해 2월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한 열병식에 정찰총국종대의 모습. 부대원들이 온몸을 위장막으로 가리고 행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대표단에 정치인을 포함한 건 기시다 총리와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대표가 북한을 상대한다는 취지일 수 있다. 그만큼 진지하게 북한과의 대화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일본인 납치자 문제나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지만, 독자적으로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도 한·미·일 군사훈련의 수위 조절을 바라거나, 일본 내 조총련의 권익 보호와 같은 수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국은 올해 초만 해도 베이징 채널을 주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번에는 몽골에서 만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용남 주중 북한 대사는 지난 3월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전자 우편으로 접촉해왔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북·중 관계가 비교적 순탄했던 시기에도 북한은 중국의 '관찰권' 내에서 제3국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왔다고 지적한다. 실제 북한은 2014년 이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이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와 물밑 접촉을 진행했을 당시에도 몽골을 선택했다. 북한이 중국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일본과 밀도 있게 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최근 북·중 간 이상 기류가 감지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을 수 있다. 중국은 2018년 5월 김정은의 다롄(大連) 방문 당시 시진핑 (習近平) 국가주석과 산책하며 친교를 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발자국 동판'을 최근 제거했다.〈중앙일보 6월11일자 1면〉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2018년 5월 8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롄 방추이다오 해변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던 모습. 최근 두 정상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던 산책로의 동판이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에 검은색 아스콘이 덮여 있다. [신화=연합뉴스, 대북 소식통]

이처럼 북·일 양측 모두 속도감 있는 협의를 원하는 분위기가 엿보이지만,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일이 관계 개선을 위해선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 대북 제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일본 입장에선 북한이 납치자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더는 협의를 진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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