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2600억원→2800억원…줄줄이 무릎 꿇은 '미국 공매도 제왕'
"테슬라는 쓰레기" 외쳤던 짐 차노스 결국 은퇴
"테슬라는 세상을 바꿀 만큼 대단한 회사가 아니다." (2015년 1월)→"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쓰레기 주식을 사고 있다. (테슬라 공매도) 손실이 커 고통스럽다." (2020년 12월)→"S&P500지수가 55% 더 하락할 수 있다" (2022년 11월)→ "사기꾼들의 시대다. 이제 공매도 전략을 끝내야 할 것 같다." (2023년 11월)
'공매도의 전설'이자 '테슬라의 적'으로 불렸던 짐 차노스 전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 회장은 테슬라의 주가 하락을 점치며 공매도 투자를 하다 큰 손실을 봤다. 급기야 지난해 말엔 약 40년간 운영했던 헤지펀드를 폐쇄, 차노스는 펀드 투자자들에게 남은 현금의 90%를 돌려주고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8년 60억달러(한화 약 8조2600억원) 이상이던 이 헤지펀드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2억달러(약 280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거듭하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이 설 곳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가 하락에 베팅해 수익을 챙기는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유명세를 탔던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잇따라 활동을 중단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과도한 부채, 잘못된 회계처리, 부정적 현금흐름 등을 직접 파헤쳐 공개 저격해온 행동주의 공매도 펀드 운용사들이 활동을 접거나 다른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차노스 전 회장이 펀드 운용을 중단하고 투자 업계를 떠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1년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의 파산을 예견하고 주가 하락에 베팅해 큰 돈을 벌었던 차노스의 퇴장은 강세장에서 공매도 전략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의료 벤처기업 나녹스와 중국 전기차 니오 등을 저격해 유명세를 탄 행동주의 공매도 헤지펀드 시트론리서치의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이 헤지펀드는 지난 2021년 밈 주식인 '게임스톱'의 기업 가치에 의문을 표하며 공매도 공격에 나섰다가 '개미 군단'(개인 투자자들)의 매수 반격에 큰 손실을 보는 굴욕을 당한 뒤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트론리서치 창업자인 앤드류 레프트는 최근 블룸버그에 "공매도는 죽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명 공매도 투자자인 칼슨 블록이 이끄는 머디워터스가 최근 첫 매수 전용 펀드를 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알려진 루이싱커피의 회계 부실을 고발해 미국 나스닥 상장폐지를 이끄는 등 '중국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운용사가 주식을 매수하는 전략으로 180도 돌아선 것에 시장은 놀라는 분위기다.
행동주의 공매도 투자가 줄어든 건 통계로도 확인이 된다.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리서치 업체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16년 265건에 달했던 전 세계 기업들에 대한 공매도 공격 건수는 지난해 110건으로 줄었다.
JP모건체이스의 전략가 니콜라오스 파니기르초글루는 "증시의 대규모 확장은 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공매도 전략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시장에선 공매도를 치는 약세론자들이 꽤 오랜 기간 수수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공매도 헤지펀드가 잠재적인 시장조작 혐의로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와 감시 대상이라는 것도 한 요인이다. 시트론리서치의 레프트 창업자는 "공매도를 했다는 이유로 법무부 조사를 받고 있다"며 "또 공매도는 끊임없는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안 좋은 사업 모델"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기업, 당국은 물론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다. 차노스 전 회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특별한 가치가 없는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을 악당으로 몰며 비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게임스톱 등 밈 주식 사태로 진짜 피해를 본 것은 공매도였고 이로 인해 산업 전체가 약화했다"고 말했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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