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독주 막자”… ‘잠든 사자’ 인텔, 네이버와 손 잡고 반격 나섰다
“여기 이 대단한 녀석(Big boy)을 보세요!”
9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인텔 비전 2024′ 행사.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의 최신 인공지능(AI) 반도체 ‘가우디3′를 최초로 공개하며 “이 제품은 (엔비디아의 주력 AI 반도체인) H100과 비교했을 때 전력 효율성이 40% 높고, AI 모델을 1.5배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텔이 AI 반도체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 추격에 나섰다. 과거 PC용 중앙처리장치(CPU) 반도체 분야의 1인자였지만, 스마트폰 시대 들어서 ‘잠든 사자’ 취급을 받던 인텔로선 급성장하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부활을 위한 도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네이버를 비롯해 AI 4대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 독일의 보쉬 등과도 손을 잡았다. 겔싱어 CEO는 “우리가 또 한번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테크업계는 인텔의 ‘탈(脫)엔비디아 연합 전선’이 성공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의 독점력이 강해지면서, 테크 기업들은 가격 압박과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엔비디아는 올해 초 새로운 AI 반도체 ‘블랙웰’을 공개하며 초격차를 통한 시장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블랙웰은 H100에 비해 연산 속도가 2.5배 빠르고, 전력 소모량은 4분의 1 수준이다. 인텔이 야심 찬 도전에 나섰지만 엔비디아가 지난 30년간 견고하게 구축해온 AI 반도체 생태계를 쉽게 허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네이버, ‘탈엔비디아’ 핵심 파트너로
인텔의 구상은 엔비디아의 반도체와 AI 개발 플랫폼 없이도 대등한 수준의 AI 개발이 가능한 새로운 동맹 체제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2006년 선보인 AI 개발 플랫폼 ‘쿠다(CUDA)’를 자사 반도체에서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며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왔다. 거의 모든 AI 개발자가 쿠다를 이용해 AI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엔비디아 이외의 반도체로 넘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날 겔싱어 CEO는 엔비디아에 대항할 주요 동맹 파트너사로 네이버를 소개했다. 행사 무대에 오른 하정우 네이버 퓨처AI 센터장은 “가우디(인텔 반도체)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을 위해 인텔과 공동 연구소를 만들 것”이라며 “기업, 공공 부문 등 다양한 고객사에 가우디를 기반으로 한 AI 딥러닝(deep learning·심층 학습)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체 AI 모델인 ‘하이퍼 클로바X’를 개발하고 운용하고 있는 네이버 역시 엔비디아의 반도체와 쿠다를 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급격하게 오른 엔비디아 반도체 가격 때문에 지난해부터 인텔 제품을 일부 사용하고 있다. 겔싱어 CEO는 “앞으로 네이버와 이어질 수십년 동안의 훌륭한 파트너십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따라잡을까
인텔은 올해 3분기부터 가우디3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제품은 TSMC의 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가 2나노 공정으로 생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업계에서는 인텔과 네이버의 동맹이 엔비디아의 아성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을 포함한 주요 테크 기업들이 이미 엔비디아의 반도체와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기에 오픈AI와 구글·애플 등 주요 빅테크들은 자체 AI 모델만을 위한 ‘맞춤형 반도체’ 설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서 인텔은 구글, 퀄컴, ARM 등 빅테크와 손을 잡고 가우디 기반의 AI 플랫폼 구축에 나섰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한 테크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아시아 시장과 범용 AI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한 뒤 점차 시장을 확대해나가는 틈새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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