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 부실 감사’ 과징금 폭탄인데 벌점은 찔끔… 한숨 돌린 삼정회계법인
감사 보수 커 평균 과징금의 16배 부과
고의 아닌 과실로 인정돼 벌점은 최저 수준
두산에너빌리티의 감사를 소홀히 한 삼정회계법인이 역대급 과징금을 맞았음에도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의 벌점은 최저 수준을 받아 남몰래 한숨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는 일정 수준을 넘으면 감사 회사를 빼앗겨 과징금보다 회계법인 실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징금과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의 산출 기준이 달라 삼정회계법인은 큰 손해를 피할 수 있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0일 정례회의를 열고 삼정회계법인에 대해 두산에너빌리티를 감사하면서 회계감사기준을 위반했다며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 20점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14억3850만원으로 정해졌다. 이는 지난해 감사를 소홀히 해 과징금을 부과받은 9곳 회계법인의 평균 과징금 8608만원에 비해 월등히 많은 규모다.
회계 부정의 시작은 2016년이었다. 그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인도 현지법인인 두산파워시스템즈인디아(DPSI)는 2조8000억원 규모의 자와하푸르 및 오브라-C 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는데, 두산에너빌리티는 오른 원가를 2020년에야 회계에 반영했다. 원가 상승 분담을 두고 발주처와 갈등이 있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금융감독원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원가 상승분을 2017~2019년에 나눠서 인식하는 게 정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산에너빌리티의 회계 위반액이 3년간 4472억원(연결기준)이라고 봤다. 금융위는 금감원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위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고의는 아니지만 중한 과실로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회사에 역대 최대인 과징금 161억원을 부과했다. 감사를 맡은 삼점회계법인에 대해서도 공사손실충당부채와 매출 관련 감사를 허술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과징금은 역대급이지만, 벌점은 그렇지 않았다. 외감법상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가 최고 300점임을 고려할 때 삼정회계법인이 받은 20점은 소소한 수준이다.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란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독립적인 외부감사가 필요한 기업에 외부감사인을 직접 지정할 때 고려하는 회계법인의 점수다.
통상 기업은 자사가 원하는 회계법인과 계약을 맺고 감사를 자율적으로 맡기지만, 신(新)외부감사법이 도입되면서 자유수임을 6년 하면 3년은 증선위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아야 한다. 2022년엔 상장사 절반이 감사인을 지정받았을 정도로 지정 감사 시장이 커 업계에선 과징금보다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를 받는 게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누적 점수가 90점이면 자산 5조원 회사 1개를 지정 회사에서 차감한다. 감사비 약 80억원의 삼성전자를 증선위에서 지정받았더라도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가 쌓이면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60점은 자산 4000억원 이상, 30점은 자산 4000억원 미만 1개 회사가 차감된다. 삼정회계법인도 점수가 누적되면 특정 회사의 감사인으로 지정됐다가 뺏길 수 있지만, 이번 조치로 받은 20점은 대세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빅4 기준으로 20점은 타격이 크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삼정회계법인의 감사인 지정 제외 점수가 낮은 이유는 회계 처리가 미흡했지만 이 과정에서 고의성은 없었다고 인정받은 덕분이다. 금융위는 삼정회계법인이 감사를 소홀히 해 회사의 회계처리기준위반 사실을 감사 의견에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재무제표를 좋아 보이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가담한 게 아니란 의미다.
그럼에도 평균보다 16배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이유는 과징금의 기준이 감사 보수라서다. 즉 회사 규모가 커 감사 보수가 많다면 회계 처리 기준 위반 정도가 ‘고의’가 아니라 ‘과실’이어도 과징금이 많아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산은 24조원, 시가총액은 코스피 32위다.
당장의 폭탄 과징금은 뼈 아프지만 삼정회계법인은 지정 회사를 뺏기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정 제외 점수는 3년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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