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임기 다 돼서 교체"…앞뒤 안 맞는 외교부의 '이종섭 쉴드'

박현주 2024. 3.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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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11일 전날 출국한 이종섭 호주 대사가 서둘러 임지로 출국한 배경과 관련해 ▶호주는 새롭게 부상하는 방산 협력 파트너로 중요성이 크고 ▶전임 대사가 이미 정년이 도래해 서둘러 교체가 필요했다는 추가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와 관련, 호주는 법령상 정년을 넘긴 대사도 초과 근무가 가능한 공관으로 지정돼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또한 중요한 안보 파트너 국가에 굳이 아직 수사 대상인 대사를 서둘러 보내는 건 불필요한 잡음으로 인해 오히려 협력 심화라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되자 규탄 발언을 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뉴스1.


이미 수십억 수출했는데…"새 파트너"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호주는 새롭게 부상하는 방산 파트너이자 인도·태평양 전략상 매우 중요한 안보 파트너"라며 "따라서 국방부 장관 출신의 중량감 있는 인물을 대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주를 상대로 2021년 7억 8000만 달러 규모의 자주포 수출, 지난해 말 24억 달러 규모의 장갑차 수출이 성사됐고, 현재도 신형 호위함 3척 수주 경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먼저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내놓은 설명이었다.

이 당국자는 "호주는 미국을 제외하고 정부와 외교·국방장관 회의, 이른바 '2+2회의'를 진행하는 유일한 국가"라고도 강조했다. 전날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인천공항에 총집합해 규탄 시위를 연 가운데 이종섭 대사가 도망치듯 출국한 데 따른 논란을 잠재우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호 국방 협력 수준이 공고하다는 설명은 역으로 신임 대사를 무리하게 서둘러 보내지 않아도 기존 협력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반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호주에는 지금까지 주로 1급(실장급) 직위를 거친 간부가 대사로 임명되곤 했는데, 굳이 장관을 지낸 중량급 인사가 대사로 가지 않아도 지난 3년 동안만 이미 30억 달러가 넘는 누적 수출액을 달성했다.
지난해 9월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현 호주대사)이 국회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정년 넘겨 근무 가능하다"더니…


또한 전임인 김완중 전 호주대사의 정년이 지난해 12월 도래했기 때문에 대사 교체가 필요했다는 외교부의 설명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호주를 포함한 일부 주요 공관의 경우 대사가 정년을 넘기더라도 추가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례로 김봉현, 이백순 전 주호주 대사의 경우도 각각 정년을 초과해 5개월씩 더 대사로 근무했다. 외교부 당국자 또한 이 대사 임명 당일인 지난 4일 "주호주대사는 법령상 정년 초과 근무 가능 직위"라고 이미 설명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가 마무리되고 기소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최소 몇 개월이라도 말미를 뒀다면 이 대사의 부임이 이처럼 논란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외교부의 정년 관련 해명이 달라진 것 자체가 이런 부정적 시각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또한 대사 공백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금기시해야 하거나 초유의 사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 교체기 등에 자국 사정으로 대사가 공석인 경우도 종종 생기는 데다, 각 공관은 대사 유고시에도 대사대리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주한미국대사의 경우 현 필립 골드버그 대사가 2022년 7월에 부임하기 전까지 1년 6개월의 공백이 있었다. 이처럼 주요 공관도 대행 체제로 충분히 운영 가능하다는 게 외교가의 상식이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김한메 상임대표가 11일 경기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한 것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외교부 장관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는 모습. 뉴스1.


신임장 없이 급히 부임 논란


이 대사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직접 받지 않고 출국해 외교 행낭으로 호주 현지에서 신임장 원본과 사본을 받게 된 것과 관련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특정 시기에) 부임하는 공관장이 소수인 경우에는 외교 행낭을 통해 별도로 신임장을 송부하고 이후 다수의 신임 대사가 국내에 모이는 자리에서 세리머니 차원으로 대통령의 신임장 수여식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임장 사본만 제출해도 입법·사법·행정 수장 등 삼부 요인 만남을 제외한 일반적인 외교 활동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사와 비슷한 시기에 임명된 나이지리아, 모로코 대사도 신임장 수여식 없이 주재국에 부임했다고 한다. 이들을은 다음 달 예정된 재외공관장회의 계기에 한꺼번에 수여식에 참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러나 신임장 원본을 자국 원수로부터 받아 이를 주재국 국가 원수에게 제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외교 프로토콜이다.

일례로 최근 한 주요국 외교 사절이 윤 대통령에게 신임장 제정을 하기도 전에 언론을 활발히 접촉하는 등 공격적으로 자국 정부 입장을 알리는 데 몰두하자 정부가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상대국 외교 사절에게 신임장 제정과 관련해 원칙과 자제를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외교부 또한 신임장 사본 제출과 원본 제정의 차이를 그만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란 지적이다.
녹색정의당 권영국 비례대표 후보(가운데) 등이 11일 경기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수사 방해 혐의로 윤석열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뉴스1.


"외교·법무 장관 탄핵 검토"


정치권에선 이 대사를 둘러싼 공방이 날로 커지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적 검토 이후 외교부와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며 "(이 대사) 임명과 출국에 관여한 외교부·법무부 장관 및 관계자 전원을 직권 남용과 수사 방해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이날 "피의자 이종섭이 결국 도피에 성공했다. 가히 ‘런종섭’이라고 불릴 만하다"고 꼬집었다.

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가 지난해 9월쯤부터 진행됐고 (이 대사가) 수사에 충분히 협조하는 것으로 안다"며 "호주는 국방 현안이 많은 나라라는 점을 고려해 인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을 아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종섭 대사 임명' 관련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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