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권 침해’ 소송 22개월…연세대 청소노동자 “학생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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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다행이다.”
김현옥(69)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학내 집회를 연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수업권 침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 연세대 학생들이 6일 패소한 직후였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22개월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김씨는 소송 낸 학생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노동이고 권리고 몰랐던 걸 알려준 것도 연세대 학생들이었고, 결국 학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미싱일만 30년 했던 김씨가 연세대 청소노동자로 입사한 건 지난 2008년이었다. 연세대 학생들이 먼저 청소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손을 건넸다. 노조를 싫어했던 김씨는 노조 활동이 권리를 지켜준다는 걸 체감했고, 2년 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장까지 맡게 됐다.
2022년 봄은 유난히 학교 쪽과의 단체교섭이 지지부진했다. 조정까지 결렬되고 3월께부터 학내 도로에 섰다. 들고 있던 손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생활임금 보장하라’, ‘인권감축. 학내구성원 안전할 권리 무참히 짓밟힌다.’ 일부 조합원이 소형 앰프로 대표 발언을 했고, 종종 구호도 외쳤다.
그러다 갑자기 ‘시끄럽게 시위를 하고 있다’며 112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인은 연세대 학생이었다. 지난 2008년 조합이 결성된 지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전 처음이라 많이 놀랐어요. 옛날엔 집회하고 있으면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세요’라고도 하고 많이 도와줬거든요.” 김씨가 말했다.
연세대 학생 이아무개씨는 2022년 5월 김씨와 박승길 당시 부분회장을 업무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6월엔 ‘수업권’을 침해당했다며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방해 받은 수업 일수만큼의 등록금과 정신적 피해에 따른 치료비를 청구한다는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그로부터 22개월간 청소·경비노동자들은 법적 대응을 이어왔다. 이들에게 힘을 보태준 건 또 다른 연세대 학생들이었다. 조합 결성 당시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도왔던 연세대 출신 변호사 등 26명이 모여 법률지원단을 구성했다. 먼저 결론이 난 건 형사사건이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그해 12월 집회의 방법·시간·수단 등을 분석한 결과, 업무방해를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경찰은 지난해 5월 집시법(미신고 집회 개최) 위반 혐의도 ‘죄가 안 됨’으로 불송치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를 세운 경찰이 이런 판단을 내린 건 큰 의미가 있었다고 소송대리인인 정병민 변호사는 전했다.
이후 민사 소송도 속도가 났다.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학생이자 학교 후배인 만큼 조정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씨 쪽이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지난해 10월 변론이 종결된 뒤 선고기일이 두 차례 밀렸지만, 끝내 서울서부지법 민사36단독 주한길 판사는 이날 연세대 학생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남는 건 결국 학생들이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위기가 닥치자 연세대 학생들은 물론, 졸업생과 교수들까지 대자보나 입장문 등의 방법으로 학내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김씨는 “처음부터 우리를 도와준 학생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으로 조합 활동을 한다”며 “우리처럼 약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두 번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노동자들과 22개월을 함께 견뎌온 정병민 변호사도 법원 앞에서 “다행스럽게도 노동자들의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는 것을 법원이 분명히 확인해줘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그 학생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다른 학내 구성원의 권리 역시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공동체에 대한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날 이씨 쪽 소송대리인단은 입장문을 내고 “즉각 항소하고,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의 부당성을 끝까지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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