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 괴물됐어?”…고려인 가족에게 덮친 화마

박진영 2024. 1.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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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드림을 품고 우리나라를 찾은 고려인 동포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신라이사'(41) 씨와 큰 딸 '김알리나'(12)의 이야기입니다.

■ 40년 만에 찾은 고국 ... 그리고 덮친 화마

신라이사 씨는 고려인 3세입니다. 1982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연해주로 넘어갔다가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라이사 씨는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이다.

신라이사/고려인 3세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항상 조국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제가 고려인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잊지 않았어요."

같은 고려인과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은 신 씨는 한국에 오길 꿈꿨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한국에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7월, 두 딸과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일을 정리해야 해서 몇 달 뒤에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터는 경주시에 잡았습니다. 미리 들어온 친구들이 경주에 모여 있었습니다.

신라이사/고려인 3세

"너무 행복했어요. 저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어요. 한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전, 신 씨가 살던 상가 주택에 불이 난 겁니다.

'치지직'

밤 11시, 자다가 눈을 떠보니 바닥에 깔려 있던 전기 판넬 컨트롤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17일에 발생한 화재 당시 사진.


불은 급속도로 번졌습니다.

신 씨는 자고 있던 두 딸을 깨우고 대피를 시도했습니다.

대문을 연 순간, 불길이 그녀와 큰딸을 덮쳤습니다. 집 안팎의 공기 압력 차이로 불이 밖으로 폭발하듯 번진 겁니다.

그나마 유치원생인 작은 딸은 이불로 싸매 다치지 않았습니다.

신 씨의 몸에 불이 붙었지만 그녀는 '불이야! 불이야!' 외치며 주택 복도를 돌아다녔습니다.

이웃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라이사/고려인 3세

"다른 사람도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두 자고 있을 시간이었으니까요. 옆집과 아랫집에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녀 덕분에 다른 주민들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사고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재 흔적이 남아있다.


■ 모두 8번의 대수술..."엄마, 나 괴물 됐어?"

신 씨는 전신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딸 알리나는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5개월 만에 극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겁니다.

2주 동안 모녀는 모두 8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치료비 6천만 원이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들 모녀에게 단 한 푼의 치료비도 없다는 겁니다.


신라이사/고려인 3세

"전 재산을 이주 비용으로 썼어요. 이제 취업해서 돈을 모으려고 했는데...
우리 가족에게 치료비 6천만 원은 너무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그동안 모은 돈을 세 가족 비행기 값과 비자 마련, 한국 정착 비용에 썼습니다.

고려인이지만 외국인이라 행정지원은 힘든 상황입니다.

입국 5개월째에 사고가 발생해, 입국 6개월이 지나야 가입할 수 있는 외국인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더 큰 걱정은 큰딸 알리나입니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알리나의 얼굴에 큰 화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신 씨는 알리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큰 딸 알리나. 알리나는 인터뷰 도중 계속 눈물을 흘렸다.

"딸이 휴대폰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울면서 이야기해요. "엄마 나 이제 괴물 됐어? 나 이제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 이렇게요. 이제 곧 사춘기인데..."

인터뷰를 하며 알리나 역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 시민 성금을 모으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시민 성금이라고 합니다.

KBS는 경주시청과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모금용 계좌 개설을 요청했습니다.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301 - 0198 - 0267 - 71 (농협은행)

인터뷰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이번 사고 때문에 고국을 찾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느냐고요.

신 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한국에 온 건 후회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불이 난 그 집을 고른 것이 아쉬워요."

할아버지의 나라를 꿈꾸며 먼 길을 찾아온 신라이사 씨와 두 딸은 이제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라이사/고려인 3세

"앞으로 치료비가 너무 걱정입니다. 알리나 미래도 걱정이구요. 누군가가 어떻게든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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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jy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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