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국민의힘,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대통령 직할체제’?
‘수직적 당정관계’ 여전
국민의힘이 18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19일 국회가 법안을 정부로 보내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후에도 국민의힘이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거부권 행사에 연달아 동원되면서 수직적 당정관계를 바꾸는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족들은 삭발로 항의했고, 야당들은 “대통령의 심부름센터”, “반인륜적 정치”라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님들의 총의를 모아 대통령께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 중재안을 중심으로 여야 협상을 진행하고 거의 합의에 이르렀는데, 민주당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기 거부권 행사를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상임위부터 본회의까지 야당끼리 처리한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또 법안의 핵심 내용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에서 야권이 7명, 여권이 4명으로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조위가 불송치 또는 수사 중지된 사건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한 규정은 유사한 입법례가 없는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재의요구권을 건의하면서 동시에 민주당에 특조위 구성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안으로 재협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거부권 행사와 별개로 새로운 이태원 특별법을 발의해 다시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9일 여당이 반발해 퇴장하면서 야당 의원들 표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들은 국회의장 중재대로 특별검사 요청권을 삭제하고, 특조위 활동을 총선 뒤로 미루는 수정안을 의결했다. 유족들도 연일 대통령실 앞에서 눈물의 집회를 열어 윤 대통령의 수용을 압박했다. 여권이 쌍특검법처럼 국회 의결 직후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수용에 대한 기대감도 형성됐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거부권 절차를 진행키로 결정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원들과 함께 의총에 인사하러 왔다가 이태원 특별법 등 안건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퇴장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0일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야당이 주도하는 조사위원회가 사실상 검찰의 수준을 갖는 조사를 1년 반 동안 한다면 그 과정에서 대상자들은 승복하지 못할 것이고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태원 특별법은 오는 19일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다.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법무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의 의견 수렴 등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 후 이달 말이나 내달 초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쌍특검법과 이태원특별법은 한 위원장 취임 후 ‘윤석열 아바타’ ‘대통령 직할체제’ 논란을 딛고 당정관계를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여당이 연거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수직적 당정관계는 오히려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159명이 사망한 참사에 대한 조사를 거부한 것이라 총선에도 악재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이날 여당의 거부권 행사 건의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여당이 특별법 표결 거부에 이어 대통령에게 입법권 무시를 건의하다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책임이 밝혀질까 두려운 것인가”라며 “정부 이송 즉시 법을 공포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유족 10명은 항의 표시로 삭발을 진행했다.
야당들은 일제히 비판했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159명 국민의 생명보다 총선 공천권이 더 소중한가”라며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을 총선용 정쟁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미 충분히 여당의 의견을 반영해 양보한 법안”이라며 “대통령의 심부름센터를 자처하는 여당에 국민의 분노가 쌓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위원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의힘의 반인륜적, 비인간적 정치행위에 상처 입었을 피해자, 유가족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사사건건 논의를 거부하고 입법을 방해하고 이제 와 ‘야당이 단독 처리했으니 협상하자’고 어깃장을 놓는 이들에게 공범이란 말만큼 어울리는 단어가 없지 않을까”라고 적었다.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SNS에 “왜 거부하는지 명분이 없다. 특조위 구성, 기록 열람권 등 독소조항이 이유라지만 대통령에게 거부하라고 건의까지 할 일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특검법에 이어 이태원특별법까지 거부한다면 총선의 심판이 두렵지 않나”라고 적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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