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루타’를 보았다… 일본이 한국에 사과해야 마땅”
731부대의 만행 증언한 시미즈 히데오
“큰 병에 사람을 통째로 넣어 포르말린으로 보존하고 있었다. 신체 일부를 절단해 유리병에 넣기도 했다.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가 밖에서 보이도록 한 포르말린 병도 목격했다.”
지난달 14일 일본 나가노현에서 만난 시미즈 히데오(清水英男)씨는 “엄마의 배 속에 있는 태아마저 포르말린에 넣고…”라는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731부대의 마지막 증언자’다. 전날 도쿄 신주쿠에서 고속버스와 완행버스를 갈아타고 6~7시간 걸려 도착한 나가노현의 한 시골 마을. 아흔세 살의 고령인 시미즈씨는 흰색 와이셔츠를 맨 윗단추까지 잠근 채 한국인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반(反)인륜적인 ‘마루타 생체 실험’을 여전히 부정한다. 시미즈씨는 1945년 3월 30일부터 8월 14일까지 4개월 반 동안 731부대에 배속됐다. 당시 열네 살 소년병이었다. 인체 실험 대상을 마루타라 불렀다. ‘통나무’를 의미했다. 시미즈씨는 사람을 재료로 사용한 이 비극의 껄끄러운 증언자인 셈이다. 비밀을 함구하고 살아온 그는 당시 731부대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여든 살이 훌쩍 넘은 2015년부터 털어놓기 시작했다.
731부대의 공식 명칭은 ‘관동군 방역급수부(関東軍防疫給水部)’. 1936~1945년 중국 동북부 하얼빈에 주둔한 이 일본군 부대는 제네바협정서에서 금지한 세균 병기를 연구·개발했다. ‘마루타’라고 불리던 포로를 세균 등에 고의로 감염시킨 뒤 죽을 때까지 관찰하는 등 야만적인 인체·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중국인, 한국인 등 약 3000명이 생체 실험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종전 후 소련의 하바롭스크 재판에서 가와시마 기요시(川島清) 731부대 제4부대장 군의소장(軍醫少將)이 증언했다.
731부대는 1945년 종전 직전에 ‘마루타’를 전원 살해했다. 건물을 폭파했고 관련 문서를 소각해 증거 대부분을 인멸했다. 부대원들은 참혹한 생체 실험에 대한 증언을 거의 다 외면했다. 그런데 시미즈씨가 늦게나마 진실을 밝힌 것이다.
-당시 731부대에서 무슨 일을 맡았나.
“쥐의 항문에서 액체를 채취해 샬레(둥글고 낮은 유리 용기)에 배양하는 일을 했다. 그것을 왜 배양하고 어디에 쓰는지는 듣지 못했다. 나중에 추정하건데 페스트균을 인체에 투여하는 실험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수습 기술원’이었다.”
-열네 살 때 어떻게 입대했나.
“1945년 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추천했다. 공작(工作)을 잘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뭔가 만드는 부대겠거니’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곳에 가고 싶어 내가 지원한 건 아니었다. 당시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소년병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포르말린 병에 담긴 ‘마루타’를 직접 봤나.
“731부대 소년병 4기생으로 입대했는데, 총 34명 가운데 나를 포함해 3명만 실습실에 배치됐다. 다른 대원은 어디에 소속돼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 일절 대화하지 못하게 했다. 입대할 당시엔 ‘마루타’를 해부한다는 말도, 세균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7월 중순쯤, 교관이 나를 데리고 (출입 금지 구역이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의 왼쪽 끝에 표본실이 있었다. 인간을 통째로 넣은 포르말린 병이 보였다. 교관에게서 ‘마루타’라는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해부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부대에 수용하고 있는 포로들이 ‘마루타’라는 것이었다.”
-교관은 출입이 금지됐던 표본실을 왜 소년병에게 보여줬나.
“그 이유는 모르겠다. 교관은 40세가 넘었고 아마 군의관이었을 것이다. 실습실에서 교관들은 자기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항상 흰 모자에 마스크를 써, 누가 누군지도 몰랐다. 표본실을 처음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이후 천장이 무너지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곤 했다.”
-731부대는 남아 있는 증거가 별로 없다. 일본이 패전 직전에 ‘마루타’를 모두 죽였다.
“내가 살아 있는 증언자다.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 731부대의 소년병 숙사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전황(戰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8월 9일 소련군이 선전포고하고 참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오전은 평상시와 같았다가 오후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저녁에 소련군 전투기가 날아와, 731부대 위로 조명탄을 떨어뜨렸다.”
-소련군도 뭔가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
“세균 부대가 그곳이란 걸 알았던 것 같다. 11일에는 아침부터 (마루타 숙소에서) 연기가 났다. 12일 오전에 ‘마루타를 불태운 뼈를 주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살점 없이) 뼈만 남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태워져 있었다. 주운 뼈는 약 20~30명 분량이었다. 뼈를 모두 주웠더니, 이번엔 ‘마루타 건물을 폭파해야 하니 폭발물을 옮기라’고 명령했다. 소년병 4명이서 폭발물을 옮겼다. ‘대피하라’고 해서 보일러실로 갔는데, 건물을 폭파할 때 파편이 그곳까지 날아왔다. 우리가 주운 인간 뼈는 어디로 가져갔는지 모른다.”
-증거를 인멸한 731부대는 패전 직전에 흩어졌나.
“8월 14일 아침에 교관이 실습실로 나를 불렀다. 나에게 권총과 청산가리를 건넸다. 만의 하나, (소련군 등에) 포로로 잡히면 이것으로 자결하라고 지시했다. 역시 표본실을 본 게 문제였다고 생각했다. 교관은 내가 아직 소년이라, 잡히면 (표본실에서 본 것을) 자백할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그날 저녁 7시쯤에 ‘이동’ 명령을 받았다. 기차를 타고 부대를 떠나기 전에 모든 군인들은 마지막으로 세 가지 지시를 받았다.”
-어떤 지시였나.
“세 가지는 ‘군대 이력을 철저히 감출 것’ ‘공직에서는 일하지 말 것’ ‘부대원 간 연락하지 말 것’이었다. 나는 권총과 청산가리를 품은 채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든 살이 넘어 731부대에 대한 증언을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해 8월 30일 집에 돌아왔다. 귀국해선 오랫동안 건축사로 일했다. 그러다 2015년에 나가노현 이이다시에서 열린 전쟁 관련 전시회를 보러 갔다. 전시된 사진들 가운데 낯익은 군대 본부 건물 사진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나 이 건물 아는데’라고 말했다. 그래서 전시회를 연 사람들이 내가 731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무엇이 달라졌나.
“나는 2016년부터 중·고등학생에게 강연을 해왔다. 중국인·조선인·러시아인이 많이 희생됐는데, 앞으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아이들에게 (731부대의 비극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내가 적극적으로 강연을 한 이유다.”
-일본 넷우익들은 ‘당신이 731부대에 없었다’고 비난하는데.
“이게 나다.”
그렇게 말하며 시미즈씨는 한 장의 흑백사진을 꺼냈다. 오른쪽 끄트머리에 전투모를 눌러쓴 앳된 소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945년 4월 1일 자 731부대 4기 사진이었다. 3월 30일과 4월 1일에 소년병 34명이 입대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경험한 일과 상관에게 들은 이야기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 진심이다. 자신을 어필하려고 증언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보고 들은 것만 말했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이 내 증언을 거짓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731부대의 존재 자체를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731부대와 당시 저지른 일을 무겁게 인정해야 한다. 희생자들이 있으니까.”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그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 일본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 때부터 한국을 망가뜨리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고 결국 식민지로 지배했다. 나쁜 일을 한 일본은 피해를 당한 나라에, 한국인에게 사과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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